특이질병

울산 석유화학 단지 인근 주민에게 나타나는 특이질병, '산업화학물질 기반 후각 신경손상'

sudi-news 2025. 7. 17. 12:44

보이지 않는 냄새의 위협, 특이질병으로 떠오른 후각 신경 손상

 울산은 대한민국 대표적인 산업 도시로, 온산국가산업단지와 남구 일대를 중심으로 석유화학, 금속, 정유산업이 밀집된 지역입니다. 산업화에 따른 경제적 성장과 고용 창출이라는 긍정적인 효과 뒤에는, 지속적인 환경오염 및 유해화학물질의 노출이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존재합니다. 그 중에서도 최근 학계와 지역 보건의 관심을 끌고 있는 질환이 바로, ‘산업화학물질에 의한 후각 신경 손상’, 즉 지역 기반의 특이질병입니다.

울산 석유화학 단지 인근의 특이질병, 산업화학물질 기반 후각 신경손상

 

 이 특이질병은 공장 배출가스에 포함된 VOC(휘발성 유기화합물), 벤젠, 톨루엔, 자일렌, 황화수소, 아세트알데하이드 등 각종 유기화학물질이 코의 후각신경에 미세한 염증을 유발하면서, 시간이 지나면 후각 감퇴나 상실로 이어지는 형태를 보입니다. 문제는 이 질환이 급성으로 나타나지 않고, 장기간 미량의 노출이 누적되면서 점진적으로 후각 기능이 손상된다는 점입니다. 인근 주민들은 “예전보다 음식 냄새가 약해졌다”거나 “가끔 공기 중에 화학 냄새가 났던 이후로 냄새를 거의 못 맡는다”는 식의 증상을 호소하곤 합니다.

 울산 남구와 온산 일대 주민을 대상으로 한 최근 건강 설문조사에서는, 전체 응답자 중 약 11%가 ‘이유를 알 수 없는 후각 저하’를 경험한 적이 있으며, 이들 중 상당수가 산업단지 인근에서 10년 이상 거주해온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일부는 후각뿐만 아니라, 두통, 피로감, 집중력 저하, 수면장애중추신경계 관련 2차 증상을 함께 겪고 있다고 보고되어, 단순 감각 이상이 아니라 신경계 전반의 기능 저하와 연관된 특이질병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후각 신경과 산업 화학물질: 어떻게 손상이 발생하는가?

 사람의 후각은 코 안쪽 상부의 후각 상피와 후각 신경세포를 통해 작동합니다. 이 부위는 외부 공기와 직접적으로 접촉하기 때문에, 공기 중의 독성 입자나 휘발성 화합물에 매우 민감합니다. 울산 석유화학단지에서 배출되는 화학물질은 대부분 눈에 보이지 않으며, 저농도에서는 냄새가 거의 나지 않거나, 냄새를 인식할 만큼의 농도여도 인체에는 유해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후각 손상 유발 물질인 벤젠, 톨루엔, 메틸에틸케톤(MEK), 스티렌 등은, 중추신경계를 직접 자극하거나 염증을 유도해 신경세포를 퇴화시키는 독성작용을 합니다. 반복 노출 시 후각 신경의 재생 기능이 저하되며, 후각 감퇴 → 이상 후각(비정상적인 냄새 인지) → 후각 상실이라는 진행 단계를 밟게 됩니다. 또한 이러한 화합물들은 코 점막과 접촉해 비염, 부비동염 등을 유발하면서 후각 전달 경로를 간접적으로 차단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울산의 일부 초등학교와 아파트 단지에서 시행된 환경 조사에서는, 야간 시간대 공기 중 휘발성 유기화합물 농도가 WHO 기준치를 일시적으로 초과한 사례도 확인되었습니다. 이는 대기 중 농도는 낮지만, 누적된 노출이 감각기관에 손상을 줄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이처럼 산업단지와 가까운 지역에서 장기적으로 생활하는 사람들일수록, 비가역적인 감각 장애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해당 질환은 단순한 환경 민감증이 아닌 지역성 특이질병으로 재분류될 필요가 있습니다.

 

진단의 한계와 고립된 피해자들

 후각 신경 손상은 자가 진단이 어렵고, 명확한 의학적 증거가 확보되기 힘든 질환입니다. 대부분의 환자들은 “냄새가 예전보다 잘 안 느껴진다”, “식욕이 줄었다”는 주관적 증상만으로 병원을 찾고, 일차 진료기관에서는 노화, 비염, 스트레스성 이상 후각 등으로 간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지역 환경 노출 이력이나 주변 주민들과의 유사 사례가 있다면, 이는 환경 노출 기반의 특이질병일 가능성을 의심해야 합니다.

 

 진단에는 후각 감별검사(UPSIT), 후각역치검사, 뇌 MRI, 전기생리검사 등이 사용되지만, 지역 내 중소병원에서는 이런 검사를 시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비용 부담 역시 만만치 않습니다. 특히 고령층이나 정보 접근성이 낮은 주민들은 자신이 후각 장애를 겪고 있다는 사실조차 자각하지 못한 채 방치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환경성 후각 손상이 산재나 환경 피해 보상에 포함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점입니다. 이는 법적 기준이 명확히 존재하지 않기 때문인데, 실제로 피해를 입었다고 판단되어도 공식적인 병명 분류나 손해 인정이 어려워 실질적인 구제가 이뤄지지 않습니다. 이러한 사각지대는 특이질병이 사회적으로 은폐되고, 피해자가 고립되는 악순환을 초래하고 있습니다.

 

예방과 대응을 위한 정책적, 지역사회적 접근 전략

 후각 신경 손상은 일단 발생하면 회복이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에, 예방 중심의 환경 관리와 건강 모니터링이 핵심입니다. 우선 울산시 및 해당 구청은 산업단지 인근 주민을 대상으로 정기적인 후각기능 검사를 포함한 환경성 질환 조기 검진 프로그램을 도입할 필요가 있습니다. 초등학생부터 고령자까지 연령대별로 증상을 추적하고, 고위험군을 대상으로는 CT 및 신경검사 연계 진료체계 구축도 고려해야 합니다.

 

 공단 배출물에 대한 실시간 대기질 모니터링 확대, 저감 장치 도입 강화, 배출업체 점검 강화는 기본이며, 주민들이 실제로 환경 위험을 체감할 수 있도록 지역 밀착형 대기경보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냄새 민원’ 접수에만 의존하지 않고, 계절·시간대별 환경 노출지도를 구축해 고농도 노출 구간에 대한 상시 모니터링 체계를 갖추는 것이 실질적인 대응의 시작입니다.

 

 또한 시민들이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도록 냄새 이상 시 자가 점검 체크리스트 배포, 생활 속 후각 훈련법 보급, 의심 증상 발생 시 대응 절차 안내 자료 제공 등의 정보 접근성을 높여야 합니다. 더 나아가 정부와 학계는 지역성 환경질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울산과 같은 중공업 도시의 건강 취약계층에 대한 장기 역학조사 연구를 통해 지속가능한 대응 로드맵을 제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후각은 생존에 필수적인 감각임에도, 보건의 사각지대에 머물러 왔습니다. 울산 석유화학단지 인근에서 조용히 진행 중인 후각 신경 손상은 단순한 지역 문제를 넘어, 산업화와 도시 환경이 인간 건강에 미치는 실질적 영향에 대한 경고라 할 수 있습니다. 이제는 이러한 특이질병도 환경보건의 핵심 의제로 정면 돌파해야 할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