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구로구 산업단지 근무자 사이에서 발견되는 특이질병, '중금속 노출성 손떨림 증후군'
디지털 제조업의 중심에서 등장한 특이질병, 손떨림 증상의 이면
서울 구로구는 한때 ‘공업의 심장’이라 불릴 만큼 산업화의 중심지였으며, 지금도 디지털전자부품·기계가공·금속도금·PCB 생산 등 첨단 제조업이 밀집된 산업단지를 운영 중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도시형 산업구조의 이면에는, 작업장의 공기 중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중금속 물질들이 근로자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이 점점 드러나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 구로구 내 전자 부품 가공업체, 도금공장, 용접작업장이 밀집한 지역의 노동자들 사이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손떨림, 손목 통증, 미세한 손 움직임의 조절 불능 등의 신경계 이상 증상이 반복적으로 보고되고 있으며, 이에 대한 분석 결과 중금속 노출에 따른 특이질병 가능성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습니다.

해당 증상은 단순한 근육 피로 혹은 진전성 질환으로 오인되기 쉽지만, 혈중 납(Pb), 카드뮴(Cd), 망간(Mn), 수은(Hg) 등 중금속 수치가 기준치를 초과하거나, 만성 노출 이력이 있는 경우, 작은 진동이나 정밀 동작에 장애가 발생할 수 있는 ‘중금속 노출성 손떨림 증후군’으로 분류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도시형 산업환경 속에서 장기간 중금속에 노출된 노동자 집단에게서만 나타나는 증상은, 지역 기반의 직업성 특이질병으로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중금속 노출 경로와 신경계에 미치는 영향
중금속은 자연환경에도 존재하지만, 산업 현장에서는 특정 작업 공정을 통해 고농도로 농축되어 노출됩니다. 예를 들어, 납땜, 회로기판 가공, 도금, 금속 절단 및 연마, 레이저 컷팅 작업 중 발생하는 금속분진이나 연기(fume) 속에는 다양한 중금속이 포함되어 있으며, 흡입, 피부 접촉, 섭취 등의 경로로 인체에 유입됩니다.
특히 납과 수은은 중추신경계를 직접적으로 자극하거나 손상시키며, 카드뮴은 말초 신경계의 기능 저하 및 감각이상, 망간은 운동기능 장애와 함께 파킨슨병 유사 증상(운동지연, 손떨림, 경직)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중금속은 일회성 노출보다는 소량이 체내에 장기간 축적되면서 점진적으로 독성 반응을 유발하는 특성을 지니기 때문에, 증상이 수년 후에야 발현되기도 합니다.
구로산업단지에서 10년 이상 근무한 한 전자부품 가공 근로자는, “몇 년 전부터 미세 작업 중에 손이 떨리고 드라이버를 제대로 잡지 못하는 일이 잦아졌고, 처음엔 단순한 근육통이나 피로로 생각했지만, 신경과 검사에서 혈중 망간 수치가 높고, 신경전도 속도가 느려진 것으로 나타났다”고 증언합니다. 이러한 사례는 산업환경 내 중금속 노출과 신경학적 증상 간의 연관성을 뒷받침하는 직접적인 증거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대부분의 중금속 관련 증상이 초기에는 미미하거나 비특이적이기 때문에, 정확한 진단 없이 방치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입니다. 손떨림, 손 저림, 감각 이상, 반응 속도 저하, 기분 변화, 수면장애 등은 일상적인 스트레스나 수면 부족으로도 나타날 수 있어, 환자 본인도 질병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장기적으로 건강을 잃는 경우가 많습니다.
진단과 보상의 사각지대, 특이질병으로의 인식 전환 필요
‘중금속 노출성 손떨림 증후군’은 공식적으로 질병 코드나 산업재해 항목으로 명시되어 있지 않으며, 대부분의 경우 증상의 원인이 중금속이라는 점이 입증되기 어려워 진단과 보상에서 배제됩니다. 이로 인해 정확한 진료를 받아도 산재 처리를 받지 못하거나, 치료비를 전액 부담해야 하는 근로자들이 다수 존재합니다.
뿐만 아니라, 기존 직업병 관리 체계에서는 급성 노출로 인한 중금속 중독은 관리 대상이지만, 만성 노출로 인한 미세한 신경학적 장애나 운동 장애는 체계적으로 진단하거나 감시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도시형 산업지대에서 근무하는 수많은 비정규직, 파견직, 단기 근로자들의 건강권이 보장받지 못하는 구조적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서울 구로구 노동건강연대와 한 대학병원의 협력조사(2024)에 따르면, 산업단지 내 특정 공정에서 근무한 노동자 73명 중 21명이 손떨림과 정밀 동작 장애를 호소했으며, 이 중 절반은 혈중 중금속 수치가 기준 이상이었다는 결과가 발표된 바 있습니다. 하지만 해당 질환은 ‘명확한 질병 진단을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근로복지공단의 보상 대상에서 제외되었습니다.
이러한 현실은 결국 중금속 노출에 의한 특이질병이 ‘질병 코드’가 아닌 ‘증상 단편’으로만 존재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그로 인해 수많은 산업현장 근로자들이 의료적·제도적으로 방치되고 있다는 점을 잘 보여줍니다.
예방과 제도적 대응: 산업 밀집지역의 건강권 보호 전략
중금속 노출성 손떨림 증후군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작업장 내 중금속 노출 모니터링 체계 강화와 정기적인 건강검진 제도 확립이 필요합니다. 구로산단 같은 밀집 산업지대에서는 작업 공정별 유해물질 노출 수준을 정기 측정하고, 특정 직무군(납땜공, 도금공, 레이저절단공 등)에 대한 집중 건강관리 체계를 마련해야 합니다.
또한 산업보건법상 규정된 ‘작업환경측정’과 ‘건강진단’ 외에도, 노동자의 실제 증상과 환경노출 이력을 연계 분석할 수 있는 특화된 직업병 감시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이를 통해 단순한 수치 측정만이 아닌, 현장 중심의 증상 기반 모니터링 체계로 전환해야 합니다. 이때 중금속 누적 노출량, 배출 주기, 공조 시스템 유무 등을 종합 고려한 정밀 위험 평가가 수반되어야 합니다.
제도적으로는, 손떨림이나 운동 기능 이상과 관련된 증상군을 ‘의심 직업성 특이질병’으로 분류하고, 일정 조건 하에 진단서 없이도 산재신청 가능하도록 하는 법 개정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중금속 기준 초과 이력, 특정 작업 이력, 신경전도 이상 소견이 있을 경우, 진단명 대신 ‘직업 관련 신경계 증상군’으로 분류해 우선 치료와 보상을 진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러한 문제가 단순히 개인의 체질이나 과로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 산업 구조와 제도적 한계에서 비롯된 특이질병이라는 인식의 전환입니다. 서울의 산업단지 중심지인 구로구에서 일하는 수많은 노동자들이, 디지털 시대의 경제 성장을 떠받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대가로 건강을 잃고 있다는 사실은 더 이상 외면되어선 안 됩니다.
이제는 ‘산업이 있는 곳에 건강 책임도 따라야 한다’는 원칙이, 법과 제도 속에서 실현되어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