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남부 공단지역 근로자의 특이질병, '무기화합물 노출성 갑상선 이상증'
산업단지에 퍼진 침묵의 이상 신호, 갑상선 질환의 증가
경기도 남부권에는 반월·시화산업단지, 오산·화성 첨단소재단지 등 다수의 대규모 공업지대가 자리잡고 있다. 이곳에는 반도체, 금속 도금, 전자부품, 배터리 재료 등을 생산하는 수많은 중소 및 대기업 공장이 밀집해 있으며, 수만 명에 이르는 근로자들이 각종 화학물질에 노출되며 일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이 지역의 생산직 근로자들 사이에서 특이하게 갑상선 기능 이상 증상을 호소하는 사례가 다수 보고되고 있다. 특히 젊은 남성 근로자들 중에서도 갑상선 호르몬 수치의 비정상적 변화, 결절, 피로감, 체중 변화 등을 겪는 이들이 늘고 있어 주목을 끌고 있다.
이러한 건강 이상은 단순한 개인 질병이 아닌, 무기화합물에 반복적으로 노출된 작업 환경과 연관된 직업병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반도체 및 금속 가공 공정에서 사용되는 비소(As), 카드뮴(Cd), 납(Pb), 수은(Hg) 등 다양한 무기화합물은 호르몬 조절계에 악영향을 미치고, 특히 갑상선 기능을 억제하거나 자극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이로 인해 나타나는 질병을 ‘무기화합물 노출성 갑상선 이상증’이라 명명할 수 있으며, 아직은 공식 질병 분류에 포함되어 있지 않지만 실질적으로는 특정 산업지역에서 반복되고 있는 지역 기반 특이질병이다.
갑상선과 무기화합물: 눈에 보이지 않는 내분비 교란
갑상선은 목 앞쪽에 위치한 나비 모양의 내분비기관으로, 체내 대사를 조절하는 주요 호르몬(T3, T4)을 분비한다. 갑상선 기능이 이상해지면 피로, 불면, 체중 증가 또는 감소, 우울감, 맥박 이상 등 전신적인 증상이 발생한다. 특히 무기화합물 중 일부는 체내 요오드 흡수에 간섭하거나 갑상선 자극호르몬(TSH)의 작용을 방해해 기능 저하나 과잉을 유발할 수 있다. 비소나 납은 산화 스트레스를 유발하고, 세포 단백질을 손상시키는 한편, 갑상선 세포의 자가면역 반응까지 유도할 수 있다. 이런 영향을 받는 근로자들은 혈액검사상 TSH와 T4 수치가 불안정하고, 일부는 양성 결절 또는 초기 암성 병변까지 진단받는 사례도 있다.
미국 국립환경보건과학연구소(NIEHS)의 연구에 따르면, 무기비소에 만성 노출된 성인 남성의 갑상선 기능 이상 위험도는 일반인보다 3.2배 높았으며, 납과 카드뮴의 혼합 노출군에서는 갑상선 기능 저하증 발생 비율이 최대 5.6배까지 증가한 것으로 보고됐다. 문제는 이러한 노출이 공기 중 먼지나 증기를 통해 비가시적으로 이루어지며, 근로자가 자각하기 어려운 상태에서 지속적으로 신체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특히 밀폐된 실내 공정이나 통풍이 미비한 작업장에서는 노출 강도가 훨씬 높아지며, 개인 보호장비 착용이 불충분할 경우 그 위험은 더욱 커진다.
현장 근로자의 사례와 현실: 직업병으로 인정되지 않는 위험
경기도 화성의 한 전자소재 공장에서 근무하는 B씨는 최근 잦은 피로감과 체중 감소, 손떨림 증세로 병원을 찾았고, 혈액검사 결과 갑상선 기능 항진증 진단을 받았다. 이전까지 병력이 없던 그는 “같이 일하는 동료들 몇 명도 갑상선 관련 약을 먹고 있다”고 말했지만, 회사는 “산업재해가 아닌 개인 질환일 뿐”이라고 대응하고 있다. 이는 무기화합물 노출에 의한 질병이 아직 국내 산업안전보건 기준에 명확히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산업재해 분류 항목 중 갑상선 질환은 명시되어 있지 않으며, 역학적 연관성을 입증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보상받기도 어렵다.
그러나 현장에서의 정황은 뚜렷하다. 동일한 공정에 참여했던 작업자들 중 일부는 갑상선 결절 수술을 받았고, 다른 일부는 만성 피로로 직무를 변경했다. 이처럼 특정 지역, 특정 공정에서 반복적으로 동일한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라면 이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산업 환경에 기인한 특이질병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특히 중금속과 무기화합물은 체내에 축적되며, 장기적으로 내분비계 뿐만 아니라 신장, 간, 심혈관계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는 노동자의 삶의 질과 생명 건강권을 심각하게 침해할 수 있는 문제다.
갑상선 이상증 예방과 제도 개선 방향
‘무기화합물 노출성 갑상선 이상증’은 아직 공식 진단명으로 채택되지 않았지만, 산업역학 및 환경의학 관점에서 보면 충분한 근거를 갖춘 새로운 직업병 개념이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우선 사업장 내 유해화학물질 관리체계 강화가 필수다. 특히 중금속 사용 공정에서는 국소 배기장치, 밀폐 시스템, 근로자 보호구 지급 및 착용 교육이 철저히 이루어져야 한다. 동시에 작업자에 대한 정기적인 갑상선 기능 검사 및 초음파 진단을 건강검진 항목에 포함시켜야 하며, 초기 증상이 나타난 근로자에 대한 신속한 대응 체계가 필요하다.
제도적으로는 무기화합물 노출과 갑상선 질환 간의 연관성을 바탕으로 신규 산업재해 인과 인정 기준 마련이 요구된다. 특히 현재까지는 갑상선 질환이 ‘일반 질병’으로만 분류되는 경향이 있으나, 특정 업종에서의 반복적 발병 사례를 축적하면 향후 산업안전보건법상의 새로운 질병 항목으로 인정될 수 있다. 또한 지역 기반 역학조사도 병행되어야 한다. 경기도 남부 공단 지역을 중심으로 한 집단 건강조사 및 작업환경 실태조사는 향후 정책 수립과 보건 대응에 중요한 기초 자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