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탄광 근처 주민에게 나타나는 특이질병, '실리카 노출성 폐포미란증'
탄광 도시 주변에 퍼진 느린 재앙, 실리카의 침묵
강원도 태백, 삼척, 정선 등은 과거부터 석탄 산업의 중심지로 발전해온 지역이다. 탄광업이 쇠퇴한 지금도 그 잔재는 남아 있으며, 일부 폐광 지역은 관광지로 탈바꿈했지만 여전히 탄광 작업과 관련된 산업시설, 자재 보관소, 석재 가공업체가 산재해 있다. 그런데 이들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 기침, 호흡곤란, 만성 가래, 폐렴 재발 등의 폐질환 증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으며, 일부는 병원에서 정확한 진단을 받지 못한 채 방치되거나 단순한 ‘만성 기관지염’으로 분류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러한 증상들이 탄광 분진에 포함된 실리카(SiO₂) 입자의 장기 노출과 관련된 ‘폐포미란증’으로 해석되기 시작했다.
실리카는 석영 성분으로 구성된 미세 입자이며, 광산 작업, 절단, 분쇄, 시멘트 가공 등 다양한 산업 활동에서 공기 중으로 비산된다. 문제가 되는 것은 이 실리카가 지름 10마이크로미터 이하의 미세입자 형태로 사람의 폐포(허파꽈리)에 깊숙이 침투해 염증을 일으키는 특성이다. 이로 인해 나타나는 질병이 바로 ‘실리카 노출성 폐포미란증’이다. 일반적인 폐렴과 달리 이 질환은 점진적으로 폐조직을 손상시키며, 비가역적인 섬유화와 폐기능 저하로 이어진다. 특히 외부 산업 활동과 직접 관련 없는 일반 주민들도 풍향, 비산먼지, 토양 잔류분진 등을 통해 실리카에 간접 노출될 수 있다는 점에서 지역기반 특이질병으로 간주할 수 있다.
실리카 노출과 폐포미란증의 의학적 연관
폐포미란증(Alveolar Laceration Syndrome)은 폐포벽이 자극 물질에 의해 미세하게 손상되고 염증 반응이 반복되며 조직이 점차 경화되는 질환이다. 실리카는 폐포 깊숙이 도달할 수 있는 초미세 입자이며, 인체에 들어오면 면역세포를 자극해 만성 염증과 조직 손상을 유발한다. 면역반응이 반복되면 섬유세포가 활성화되며, 점점 폐포벽이 두꺼워지고 폐 기능이 떨어지며 산소 교환이 어려워지는 악순환이 시작된다. 이때 나타나는 증상은 단순 호흡기 질환과 유사하지만, 스테로이드나 일반 항생제로도 호전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진단과 치료가 어렵다.
서울의 한 호흡기내과 전문병원에서 분석한 결과, 강원도 A시에서 온 60대 남성이 만성기침과 호흡곤란을 호소하며 내원했고, HRCT 촬영을 통해 폐포 주변의 미만성 섬유화 병변이 발견되었다. 조직검사 결과, 실리카 결정이 포함된 폐포 내 염증 반응이 확인되었고, 이는 ‘비직업적 환경노출로 인한 실리카 유래 폐포미란증’으로 최종 진단되었다. 그는 직접 채굴 작업을 한 적은 없지만 어린 시절부터 광산 인근에 거주하며 지속적으로 분진에 노출되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러한 사례는 실리카 노출성 질환이 현직 광부뿐 아니라 주변 거주민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지역성 질병임을 시사한다.
지역 주민의 고통과 제도적 사각지대
강원도 광산 지역 주민 중 일부는 만성적인 호흡기 문제로 인해 일상생활에 큰 불편을 겪고 있지만, 질병이 환경요인에서 비롯된 것임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의료기관에서도 아직까지 ‘실리카 노출에 의한 환경성 폐질환’에 대한 인식이 낮아, 진단과 조기 대응이 미흡한 상황이다. 또한 현행 산업재해보험 체계는 근로자에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비직업적 노출자 혹은 퇴직 후 오랜 시간이 지난 주민들은 건강 문제의 원인과 보상 구조 모두에서 배제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문제는 실리카 노출 농도가 법적 기준을 넘지 않더라도, 장기간의 저농도 노출이 누적되면 충분히 질병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WHO, 미국 NIOSH 등에서도 이미 경고한 바 있으며, 해당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한 호흡기 정기검진 체계와 환경 노출 실태 조사가 필요하다. 강원도 보건환경연구원에서 시행한 일부 지역의 토양분석에서도, 광산 인근에 실리카 농도가 일반 농촌 대비 최대 7배까지 높게 검출된 바 있다. 이는 실리카 노출의 지역적 편차가 뚜렷함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다.
예방과 대응 방안, 그리고 새로운 인식의 필요성
‘실리카 노출성 폐포미란증’은 공식적인 질병 코드로 분류되지 않지만, 강원 탄광지역 주민들에게는 실제로 나타나는 은폐된 특이질병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환경역학 기반의 장기 조사, 정밀 건강검진, 조기 진단 시스템 마련이 필요하다. 특히 광산 주변 지역에 대한 환경 건강영향평가를 정기적으로 실시하고, 노출 가능성이 높은 지역에는 이동형 폐기능 검진 차량 등을 투입하여 조기 대응을 강화해야 한다. 또한 지역 주민을 위한 건강 교육과 함께 실리카의 위험성과 관리 방안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제도적 차원에서도, 환경성 질환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해 비직업적 노출자도 의료 지원과 환경 개선의 수혜자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실리카에 의한 폐포미란증이 특정 지역에서만 집중적으로 발생한다면, 이는 환경적 원인을 동반한 지역기반 특이질병으로 분류되어야 하며, 지역 보건소와 지자체가 중심이 되어 관리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질병이 단순한 개인의 건강 문제가 아니라 지역 전체의 환경 건강권 문제로 접근되어야 한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