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제천 화학공단 인근 주민에게 나타나는 특이질병, '저농도 가스 누출성 만성 두통 증후군'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의 불편함, 제천에서 나타난 건강 이상
충청북도 제천시는 내륙산업도시로 성장해오며, 제천 화학공단을 중심으로 중소 화학기업과 합성수지, 석유계 화학제품 제조시설이 다수 입주해 있다. 이 공단은 지역 경제에 일정 기여를 해왔지만, 주변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 설명하기 어려운 만성적인 두통, 어지럼증, 인지 저하 등의 증상이 꾸준히 보고되고 있다. 특히 이들 증상은 병원에서 별다른 원인을 찾지 못하거나, 단순 스트레스성 두통으로 분류되곤 해 정확한 진단 없이 방치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최근 환경보건 전문가들은 이 증상들이 단순한 일상 스트레스가 아니라, 화학공단에서 저농도로 누출되는 가스성 물질에 장기간 노출된 결과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른바 ‘저농도 가스 누출성 만성 두통 증후군’은 공단 주변에서 일상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미량의 휘발성 유기화합물(VOC), 황화합물, 암모니아, 질소산화물 등 가스류가 장기간 인체에 노출되면서 뇌혈관 및 신경계를 자극하여 발생하는 특이질환이다. 특히, 이 지역의 특정 마을에서는 하루 중 특정 시간대에 두통과 눈 따가움이 심화되며, 야외 활동 후 증상이 강해지고 실내에서는 호전되는 경향이 보고되고 있다. 이는 외부 환경에서 기인한 자극이 두통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정황이다. 이러한 양상은 제천이라는 특정 지역에 한정되어 관찰된다는 점에서, 지역기반 특이질병으로서의 성격을 띠고 있다.
뇌신경 자극과 가스 누출의 과학적 연결 고리
화학공단에서 방출되는 가스성 물질들은 대부분 냄새가 희미하거나 일상에서 쉽게 인지되지 않는 수준의 농도로 공기 중에 퍼지기 때문에, 주민들은 체감 없이 장기간 노출되기 쉽다. 특히 황화수소(H₂S), 이황화탄소(CS₂), 톨루엔, 벤젠 등의 휘발성 화학물질은 중추신경계에 작용해 두통, 집중력 저하, 수면장애, 인지 기능 이상을 유발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물질은 단기 고농도 노출보다는, 오히려 저농도라도 반복적인 장기 노출이 지속될 경우 뇌신경계 기능에 점진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서울 소재 한 대학병원 환경의학과에서는 제천 공단 인근 마을 주민 43명을 대상으로 설문과 혈중 바이오마커 검사를 실시했고, 그 결과 피검자 중 약 30%에서 휘발성 유기화합물 노출에 따른 대사 이상 신호가 포착되었다. 특히 이들 대부분이 “오전 시간대에 집중력 저하와 압박감 있는 두통”을 공통적으로 호소하고 있었다. 환경부 산하의 공기질 조사에서도, 공단 내 유기화학물질 저장 탱크 주변에서 기준치를 넘지 않으나 유의미한 수준의 VOC가 검출되었다. 이는 법적 기준 이내의 농도일지라도, 지속적이고 복합적인 노출이 인체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근거를 제공한다.
주민의 고통과 제도의 침묵 사이에서
공단 인근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60대 주민 K씨는 “몇 해 전부터 이유 없이 머리가 아프고 멍한 느낌이 든다”며 병원을 수차례 찾았지만, 정확한 진단을 받지 못했다. 그는 “마을 여러 사람이 비슷한 증상을 겪고 있지만, 병원에서는 그냥 나이 탓이나 스트레스로 돌린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 L씨는 “특정 날 아침에는 밖에 나가면 비닐 타는 냄새 같은 게 나고 머리가 지끈거린다”며, 화학냄새와 두통의 연관성을 직관적으로 느끼고 있지만 이를 입증할 수단이 없다고 하소연한다.
문제는 현재 법적·행정적 기준으로는, 이들이 호소하는 증상이 ‘질병’으로 분류되기 어렵고, 환경 유해물질에 의한 피해로 인정받기도 어렵다는 점이다. 공단 가스 누출량은 법정 허용기준 이내이고, 실제로 주민 건강 모니터링 체계나 실시간 공기질 분석 인프라도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는 질병은 제도권에서 외면되기 쉽다. 또한, 이러한 건강 문제가 지역 언론이나 주민 간 입소문을 통해 알려지더라도, ‘심리적 불안’ 또는 ‘우연적 증상’으로 치부되는 경향도 문제로 지적된다. 결과적으로, 공단이 만든 만성 두통 증후군은 의학적 사각지대이자, 제도의 공백지대에 놓인 특이질병인 셈이다.
제천형 특이질병에 대한 대응과 건강권 확보 방안
‘저농도 가스 누출성 만성 두통 증후군’은 그 자체로 신종 질병으로 분류되지는 않았지만, 특정 지역 주민에게 반복적이고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특이증상이므로, 역학적 분석과 예방적 공중보건 조치가 반드시 병행되어야 할 질환군이다. 무엇보다 우선적으로는, 제천 화학공단 주변 마을에 이동형 실내·외 공기질 모니터링 장비를 설치하고, 유해물질 누출 실태를 정기적으로 공개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주민이 자신이 어떤 물질에 노출되고 있는지 알 수 있어야 하며, 건강 이상을 호소할 수 있는 제도적 통로가 마련되어야 한다.
또한, 반복적으로 두통이나 인지장애를 호소하는 주민을 대상으로 지자체와 연계한 환경역학 조사, 신경과·환경의학과 협진 기반의 진료 체계 구축, 그리고 건강 피해 기록의 데이터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이러한 질환이 특정 지역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할 경우, ‘지역기반 특이질병’으로 공식 분류해 예방과 치료, 보상까지 연결되는 체계적인 관리 틀이 마련되어야 한다. 제천은 단순히 공장이 많은 도시가 아니라, 그 공장이 뿜어내는 보이지 않는 가스가 사람의 뇌를 어떻게 오랜 시간 갉아먹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