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해녀들에게서 보고된 특이질병, '잠수 반복성 고압산소 신경증'
제주 해녀의 생업과 위험, 보이지 않는 신경계 증상
제주 해녀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무형문화유산이자, 오랜 세월 동안 해양 채취 노동의 상징으로 존재해 왔다. 그들은 수심 10~20m 깊이까지 잠수하여 해산물을 채취하는 생업을 수십 년간 이어왔으며, 물질이라 불리는 이 노동은 하루 수십 회의 반복 잠수를 동반한다. 최근 들어 일부 해녀들 사이에서 집중력 저하, 감정 기복, 미세한 운동장애, 수면장애, 지속적인 두통 등 신경계 이상 증상이 보고되고 있으며, 단순한 피로나 고령의 결과로 치부되기 어려운 양상이 드러나고 있다. 이 증상은 제주 해녀들에게 공통적으로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학계에서는 이를 ‘잠수 반복성 고압산소 신경증’이라 명명할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해녀들의 물질은 일반적인 잠수보다 훨씬 더 빈번하고 짧은 텀으로 고압 환경과 저산소 환경을 반복적으로 오가게 된다. 이는 체내 산소와 질소의 대사 균형을 무너뜨리며, 미세한 신경계 손상을 초래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특히 장기간 해녀 생활을 해온 고령 여성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인지 저하와 기분 변화, 신경 과민, 수면 불균형 등의 증상은 스트레스나 생활 환경만으로 설명하기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은 제주라는 지역적, 직업적 특성에 국한되어 나타나는 질병군으로서, 지역 기반 특이질병의 정의에 부합한다.
고압산소 신경증의 원인과 생리학적 기전
‘고압산소 신경증’(oxygen toxicity syndrome)은 수중 작업에서 일정 깊이 이상으로 내려갔을 때, 고압 상태에서 흡입하는 산소 농도가 높아지면서 중추신경계에 독성 반응을 일으키는 증상군이다. 일반적으로는 스쿠버 다이버나 산업 잠수부에게서 주로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해녀처럼 장기간 저산소-고압 상태를 수십 년간 반복한 경우에도 누적된 고압 산소 노출이 뇌신경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이 보고되고 있다. 특히 뇌세포 내 활성산소의 급격한 증가와 항산화 효소 시스템의 고갈은 소뇌 기능 이상, 해마 영역의 기억력 저하, 기분 조절 기능 이상을 유발할 수 있다.
국내 한 해양의학 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해녀 경력 30년 이상인 여성 54명 중 62%가 중추신경계 기능 이상을 자각하고 있음을 보고했다. 주로 불면증, 무기력감, 두통, 단기 기억력 저하 등의 증상이 반복적으로 나타났고, 특히 물질 후 더 심해지는 경향을 보였다. 뇌파 분석에서도 일부 피험자에서 기저 전두엽 활동 저하, 해마 영역의 혈류 감소가 나타났으며, 이는 고압산소 노출과 관련된 신경 독성 가능성을 지지한다. 이러한 신경계 이상은 단순히 개인의 체력이나 심리 상태의 문제가 아니라, 직업적 환경에 따른 생리학적 부작용으로 바라보아야 할 지점이다.
해녀들의 현실과 제도적 지원의 사각지대
제주 해녀 대부분은 60대 이상의 고령 여성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건강보험 혜택이나 정기 건강검진에서도 제외되거나, 단순히 “고령자의 일반 질환”으로 증상이 무시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A 해녀(67세)는 최근 몇 년 사이에 물질 후 머리가 띵하고, 단어가 자주 생각나지 않는 현상을 겪고 있으며, 병원을 다녀도 “치매 초기일 수 있다”는 말만 들었을 뿐, 직업적 배경에 대한 분석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녀는 “물속 들어갔다 나오면 더 심해지는 것 같은데, 누구도 이걸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자신의 증상이 일상화된 무지 속에 묻혀 있음을 토로했다.
문제는 이와 같은 증상들이 병명으로 정의되지 않았기 때문에, 공식적인 통계로 집계되지 않고, 연구나 제도 개선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있다는 점이다. 해녀들은 여전히 스스로를 ‘물질을 할 수 있는 건강한 사람’으로 여기며 증상들을 개인 문제로 감내하는 경우가 많고, 지역사회나 정부 역시 이에 대한 명확한 대처를 하지 못하고 있다. 고압산소 노출이라는 직업 환경에 따른 신경계 영향은 아직 국내에서는 체계적으로 분석된 적이 없으며, 해녀들의 삶 속에 묻혀 있는 조용한 신경계 손상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지역 기반 질병으로의 재조명과 건강권 보장을 위한 전략
‘잠수 반복성 고압산소 신경증’은 단순한 잠수병이나 일반 노화성 질환으로 분류하기 어려운 특수한 신경계 질환이다. 이를 공식적인 질병군으로 분류하고 지역 공중보건 영역에서 인식하기 위해서는, 해녀 건강 상태에 대한 장기적 추적 조사, 정기적인 뇌신경 기능 검사, 환경성 요인 분석이 선행되어야 한다. 제주도 보건당국과 해양수산부는 해녀 건강 진료소를 설치하고 있으나, 대부분은 근골격계 중심의 진료에 그치며, 뇌 건강이나 신경계 기능에 대한 체계적 모니터링은 전무한 실정이다.
앞으로는 해녀를 대상으로 한 전문 뇌신경 검사 도입, 잠수환경 측정 데이터 수집, 항산화 보충 치료 등 통합적 건강관리 시스템이 도입되어야 하며, 고위험군을 대상으로 한 특수 진단 기준 마련과 예방 교육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또한 관련 연구를 통해 ‘직업성 고압산소 노출 신경증’이라는 새로운 질환 코드 개발도 고려되어야 한다. 이는 단지 제주 해녀만의 문제가 아니라, 해양 국가로서 다양한 수중작업자가 존재하는 대한민국 전체의 해양노동 환경에 대한 선제적 대응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지금 해녀들이 겪고 있는 신경계 증상은 단지 ‘나이 탓’이 아니라, 오랜 시간 쌓인 환경 노출의 경고 신호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