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도시철도 운전원에게 발생하는 특이질병, '밀폐 공간 저산소성 집중력 저하증'
지하철이라는 밀폐 공간 속 직업적 위험
대구는 대한민국에서 여름철 평균 기온이 가장 높은 도시 중 하나이며, 지하철 시스템은 도시 내 대중교통의 핵심 축을 담당한다. 특히 대구 도시철도는 도심 구간 대부분이 지하로 설계되어 있고, 운전원들은 좁고 밀폐된 운전실에서 하루 평균 6~8시간 이상 근무한다. 이런 환경은 외부 공기와의 접촉이 극히 제한된 채, 반복적이고 단조로운 시각 자극, 인공 조명, 온도 변화에 노출되는 조건을 만든다. 최근 대구 지하철 운전원들 사이에서 공통적으로 집중력 저하, 판단력 둔화, 시야 흐려짐, 간헐적인 어지럼증과 무기력증 등의 증상이 지속적으로 보고되고 있으며, 이는 일반적인 피로나 스트레스의 차원을 넘어서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증상은 공통적으로 장시간 운전실에 머문 근무일 이후 더욱 두드러지며, 휴무일에는 상당히 완화된다고 보고되고 있다. 특히 운전 중 반복적으로 숨이 가빠지는 느낌, 가슴 답답함, 시야 흐림 등을 경험한 운전원들이 다수 존재하며, 일부는 이를 “산소가 부족한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해당 공간의 공기질은 법적으로 정해진 허용기준을 넘지 않는 경우가 많아, 명확한 질병으로 인식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이 현상이 밀폐 공간 내 저산소 상태와 미세한 대기 불균형이 누적적으로 뇌기능에 영향을 미친 결과라고 보고 있으며, 이를 ‘밀폐 공간 저산소성 집중력 저하증’으로 명명할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뇌기능과 산소 농도, 그리고 집중력의 연관성
뇌는 신체 기관 중 가장 많은 산소를 소비하는 장기로, 산소 농도가 정상 수치보다 단 1~2%만 낮아져도 인지 기능과 신경전달 효율에 영향을 받는다. 일반적인 실내 공기의 산소 농도는 약 20.9%이며, 이보다 낮아질 경우 집중력 저하, 두통, 졸림, 시야 흐려짐, 정서 불안정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특히 도시철도 운전실은 작은 밀폐 공간에 전자 장비와 조명이 밀집되어 있어, 이산화탄소 농도 증가와 산소 감소 현상이 복합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환경이다. 이러한 조건이 반복되면, 만성적인 산소 부족이 뇌의 전두엽과 해마 기능을 약화시키고, 결과적으로 기억력, 판단력, 정서 조절 능력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서울의 한 산업의학 연구소는 대구 지하철 2호선 운전원 30명을 대상으로 근무 전·후 산소포화도 및 혈중 젖산 농도를 측정한 결과, 근무 후에 평균 산소포화도가 2~3% 감소하고, 젖산 농도는 1.4배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산소 부족으로 인한 경도 대사 불균형이 발생하고 있다는 신호이며, 반복적으로 누적될 경우 인지력 저하와 피로 누적에 의한 사고 위험 증가로 이어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더욱이 산소 농도가 외견상 ‘정상범위’에 속하더라도, 좁고 공기순환이 미비한 환경에서 장시간 머무를 경우 뇌 기능에 미세한 영향을 주는 저산소 상태가 만성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이 문제는 단순한 불편을 넘어 ‘특이질병’으로서 다뤄져야 한다.
운전원의 증언과 구조적 무관심
대구 도시철도에서 근무 중인 운전원 K씨(41세)는 “운전 중 앞이 흐릿해지는 경험을 몇 번 했고, 목적지 통과 직전에는 정신이 멍해져 실수할 뻔한 적도 있다”고 밝혔다. 그는 자신뿐 아니라 동료들 사이에서도 “근무 후에는 이유 없는 피로감과 무기력증, 평소보다 말수가 줄고 짜증이 늘어난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고 전했다. 또 다른 운전원 L씨는 “밤 근무 후 집에 돌아오면 기억이 끊기는 느낌”이라며, 집중력이 저하되고 감정 통제가 어렵다고 느낀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이들은 병원에 가면 단순 스트레스나 수면 부족으로 간주돼 명확한 진단을 받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증상들이 병리학적으로 명확한 기준에 들어맞지 않기 때문에, 제도권에서는 이를 공식적인 질병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공기질 검사도 대부분 전체적인 차량 시스템 기준으로 시행되며, 운전실 내부의 미세한 산소 농도 변화나 이산화탄소 상승에 대한 실시간 모니터링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처럼 질병으로 의심되는 신체적 현상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도, 제도적 관심과 지원은 극히 제한적이다. 결국 운전원들은 자신이 겪는 증상을 스스로 감내하고,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지는 수밖에 없는 구조 속에서 건강권을 잃어가고 있다.
지역기반 특이질병으로 인식하고 선제적 개선책 마련해야
‘밀폐 공간 저산소성 집중력 저하증’은 단지 도시철도 운전원의 불편을 넘어, 공공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만약 운전 중 순간적인 집중력 저하나 인지 혼란이 사고로 이어진다면, 단순한 직업 질환을 넘어서 다수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구조적 리스크로 확산될 수 있다. 따라서 이 질병은 대구라는 지역성과 도시철도라는 직업 환경에 뚜렷하게 기반한 특이질병으로 정의되어야 하며, 그에 맞는 체계적인 대응 체계가 마련되어야 한다.
우선, 도시철도 운전실 내부의 산소 농도, 이산화탄소 농도, 온도·습도 변화 등을 정기적이고 실시간으로 측정할 수 있는 센서 장비 설치가 필수적이다. 또한 운전원들을 대상으로 한 인지 기능, 시각 반응 속도, 정서 반응 테스트 등의 정기적 건강 평가 체계도 도입되어야 한다. 나아가 장기적으로는 이러한 환경에서 일어나는 생리학적 변화들을 반영해 ‘밀폐 공간 직업군 건강관리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이러한 증상이 지속될 경우에는 산재로 연계할 수 있는 진단 기준도 필요하다. 대구 지하철 운전원의 사례는 지금 이 순간 전국의 도시철도에서 근무 중인 수천 명의 운전원에게도 해당될 수 있는 문제다. 이제는 “버틸 수 있는가”가 아니라 “지켜야 하는가”를 묻고 대답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