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이질병

인천항 항만 하역 노동자의 특이질병, '중금속 노출성 손발저림 신경증'

sudi-news 2025. 7. 25. 20:30

항만 노동자의 반복되는 신경계 증상, 손발 저림의 실체는 무엇인가

 인천항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국제 항만 중 하나로, 매년 수천만 톤의 화물과 원자재가 이곳을 통해 출입한다. 이곳에서 일하는 하역 노동자들은 컨테이너, 광물, 철광석, 화학 원료, 산업 폐기물 등 다양한 물질을 다루는 과정에서 직접적인 신체 노출이 불가피하다. 최근 이들 중 상당수가 이유 없는 손발 저림, 마비감, 감각 이상을 호소하고 있으며, 일부는 장기간 지속된 증상으로 인해 작업에 심각한 지장을 받고 있다. 일반적으로 이런 증상은 당뇨나 말초신경질환으로 오인되기 쉽지만, 실제로는 중금속 흡입 또는 피부 접촉에 의한 신경 손상일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제기되고 있다.

중금속 노출성 손발저림 신경증, 항만 작업자들에게서 나타나는 특이질병

 

 특히 인천항에서는 중금속 함량이 높은 망간, 납, 카드뮴, 크롬, 니켈 등의 원자재가 자주 취급되며,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미세 금속 분진은 장비 정비, 운반, 분리작업 중 공기 중에 확산된다. 하역 노동자들은 대부분 야외에서 장시간 작업하며, 방진 마스크나 보호장갑 착용이 미비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호흡기와 피부를 통해 지속적인 중금속 노출이 발생한다. 중금속은 체내에 축적되는 특성을 가지며,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말초신경계에 독성을 미쳐 손발 저림과 감각 이상, 때로는 운동장애까지 유발할 수 있다. 이러한 양상은 인천항이라는 특정 환경과 직업군에서 반복적으로 관찰되고 있다는 점에서, 지역 기반 특이질병으로 주목되어야 한다.

 

중금속 노출이 신경계를 파괴하는 메커니즘

 중금속은 체내에서 자연스럽게 배출되지 않고 장기간 축적되며, 신경세포의 대사과정을 방해하거나, 미토콘드리아 기능을 손상시켜 세포 사멸을 유도한다. 특히 납(Pb)은 신경전달물질의 분비를 억제해 말초신경의 전도 속도를 늦추고 감각 이상을 일으키는 대표적인 신경독성 금속이다. 카드뮴(Cd)은 칼슘 대사를 방해하여 신경 근육 조절에 영향을 주며, 크롬(Cr)이나 니켈(Ni)은 산화 스트레스를 유발해 신경세포를 직접적으로 손상시킬 수 있다. 이러한 금속들은 대부분 하역 노동자들이 다루는 원자재 또는 원료물질에 함유되어 있고, 분진 형태로 흡입되거나 피부 접촉을 통해 인체로 유입된다.

 

 2022년 산업보건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인천항에서 10년 이상 근무한 하역 노동자 12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39%가 손발 저림 또는 감각 이상 증상을 경험했고, 이 중 상당수가 혈중 납 농도가 기준치 이상이었다. 특히 무연 휘발유나 비철금속 화물 하역에 자주 투입되는 인력일수록 중금속 수치가 높았고, 이들은 대부분 보호구 착용이 불완전하거나 환기 조건이 미비한 환경에서 작업했던 경험이 있었다. 이 같은 결과는 중금속 노출과 말초신경 증상 사이의 직접적인 인과관계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하며, 단순한 개인 건강 문제가 아닌 직업성, 지역성 특이질병으로서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

 

반복되는 증상과 무관심, 제도적 진단의 사각지대

 인천항에서 15년째 근무 중인 하역 노동자 A씨는 “5년 전부터 손끝이 저리기 시작했는데, 병원에서는 ‘신경통’ 정도로만 진단하고 별다른 치료도 없었다”며 “최근에는 젓가락질도 어려울 만큼 감각이 무뎌졌다”고 토로했다. 그는 특히 “작업장에서는 늘 금속 냄새가 났고, 먼지가 많아도 그냥 참고 일할 수밖에 없었다”며, 작업환경과 자신의 증상 사이에 분명한 연관이 있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증상은 대부분 병원에서 당뇨성 말초신경증이나 과로성 신경장애로 분류되며, 중금속 노출 여부는 검사조차 시행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처럼 증상이 명확해도, 중금속 노출에 대한 의료진의 인식 부족과 작업 이력에 대한 무관심은 정확한 진단과 치료를 어렵게 만든다. 더불어, 하역 노동자 대부분이 일용직 혹은 파견직으로 구성되어 있어, 건강검진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경우도 많다. 산업재해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중금속 노출과 질병 발생 간의 인과관계를 입증해야 하지만, 이를 위해선 작업 환경 자료, 노출 이력, 역학조사 자료가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 항만 당국과 고용 사업주는 이러한 정보를 체계적으로 보관하거나 제공하지 않고 있어, 노동자들은 질병의 원인을 입증하지 못한 채 건강 악화를 감내하고 있는 실정이다.

 

항만 특수질병으로서의 공인과 체계적 대응이 시급하다

 ‘중금속 노출성 손발저림 신경증’은 단지 몇몇 개인의 건강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이는 특정 지역(인천항), 특정 직종(하역 노동자), 특정 작업환경(중금속 분진 노출)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질병군으로서, 명백한 지역 기반 특이질병으로 분류되어야 한다. 먼저, 정부와 지자체는 항만 작업장 내 공기질과 금속 분진 농도에 대한 정기적 측정과 공개, 그리고 개인 보호장비 착용 여부에 대한 철저한 관리를 시행해야 한다. 이를 기반으로 고위험 작업군을 선별해 혈액 내 중금속 농도 측정, 신경계 기능 평가, 손발 감각 검사 등 체계적인 건강 모니터링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또한 관련 기관은 중금속 신경계 영향에 대한 의료진 교육과 진단 프로토콜 개발, 그리고 직업성 질병 코드 확대를 통해 보다 정확하고 빠른 진단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산재 판정 시에는 일반 진단만으로 판단하지 않고, 노출 이력과 유해물질 특성을 종합적으로 반영하는 평가체계 도입도 필요하다. 장기적으로는 ‘항만 직업성 중금속 노출 질병군’에 대한 국가 단위의 역학조사를 실시하고, 일정 기준 이상 노출된 작업자에 대해서는 정기적 검사 및 치료 비용 지원, 작업 전환 권고 등의 사후 보호 조치가 시행돼야 한다. 인천항 하역 노동자들의 손끝 저림은 단순한 증상이 아니라, 대한민국 항만 산업이 외면해온 구조적 위험의 신호탄이다. 지금 이들의 고통에 제도적 응답을 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