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폐광촌 주민에게서 나타나는 특이질병, '실리카 유입성 만성 폐섬유화증'
사라진 탄광, 남겨진 먼지 — 조용히 퍼지는 폐의 위협
1970~80년대 국내 석탄산업의 중심지였던 강원도 정선, 태백, 삼척 등의 폐광촌은 한때 산업의 중심이었지만, 광산이 문을 닫은 후 긴 시간 동안 도시 기능이 정지된 채 잊힌 공간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이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 특이한 호흡기 질환 사례가 보고되기 시작했다. 주된 증상은 지속적인 마른기침, 점차적으로 악화되는 호흡곤란, 계절과 무관한 천명음(쌕쌕거림) 등이며, 단순한 감기나 만성기관지염과 구분이 어려워 조기 진단이 늦어지는 경우가 많다. 특히 일부 환자의 경우, 병원 검사 결과에서 폐 조직 내 섬유화 흔적이 확인되었고, 이는 전문가들로부터 ‘실리카 유입성 만성 폐섬유화증’이라는 명칭으로 주목받고 있다.
실리카(Silica), 즉 규소는 석영, 사암 등 암석을 구성하는 주요 성분으로, 광산 채굴과 가공 과정에서 미세한 분진 형태로 공기 중에 퍼진다. 이 실리카 분진이 호흡기를 통해 장기간 유입되면 폐 조직에 염증을 유발하고 점차 섬유화로 진행되어, 폐의 탄성과 기능을 점차 잃게 만든다. 이는 과거 석탄산업 종사자들에게 흔히 발생했던 ‘규폐증’과 유사하지만, 차이점은 직접적인 채굴 노동자뿐만 아니라 주변 주민에게도 증상이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즉, 탄광이 문을 닫은 지금도, 과거에 쌓인 분진 잔재와 풍화된 실리카 입자가 마을 공기 중을 순환하면서 질환을 유발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실리카의 유해성과 폐섬유화의 진행 과정
실리카는 크기가 10마이크로미터 이하인 초미세입자 형태로 존재할 경우, 인체의 자연 여과 장치를 우회해 폐포 깊숙이 침투한다. 인체는 이 이물질을 제거하려 하지만, 실리카는 화학적으로 안정하고 배출되기 어려워 면역 반응을 자극하고 만성 염증 상태를 유도한다. 이 과정에서 폐포 조직 주변에 점차 콜라겐 섬유가 축적되며, 폐섬유화라는 비가역적 변화가 일어난다. 이 변화는 시간이 지날수록 폐의 탄성을 떨어뜨리고 산소 교환 효율을 저하시켜, 결국 호흡부전, 운동능력 저하, 산소 의존적인 삶으로 이어진다.
실리카 유입에 의한 폐섬유화증은 일반적인 감염성 질환과 달리 천천히, 그러나 지속적으로 진행되며, 조기 증상이 애매하고 만성 기침 정도로 표현되기 때문에 흔히 ‘노인성 질환’으로 오인된다. 그러나 실제 폐기능 검사에서는 폐활량 감소, 폐포 확산능력 저하, 산소포화도 감소가 나타나며, 조직검사에서는 폐포 주위 섬유화와 흉터 형성 흔적이 발견된다. 강원 폐광촌 일부 지역에서 수행된 비공식적 건강조사 결과, 마을 주민 중 60세 이상 고령자 중 약 23%가 유사 증상을 호소했고, 이 중 절반 가까이가 폐섬유화 소견을 지닌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 질환은 병리학적 특성과 지역적 특수성이 결합된 형태로, ‘지역기반 특이질병’으로서의 성격이 뚜렷하다.
주민들의 증언과 보건 사각지대의 현실
정선군의 폐광촌 마을에 사는 72세 주민 A씨는 최근 3년간 심한 기침과 숨 가쁨으로 인해 병원을 수차례 찾았다. 처음에는 노화에 따른 폐기능 저하로 생각했지만, CT 촬영 결과 폐에 퍼져 있는 섬유화 흔적이 발견되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이 동네에서 살았고, 폐광 이후엔 공장이 없었으니 먼지는 줄었을 줄 알았는데, 도리어 숨 쉬기가 더 힘들다”며, 마을 뒷산을 오를 때마다 숨이 가빠 걸음을 멈춰야 하는 생활을 하고 있다고 토로한다. 또 다른 주민 B씨는 “겨울이나 여름 가릴 것 없이 기침이 나고, 밤에 자다 갑자기 숨이 막히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며 불안을 호소했다. 이러한 증상은 일부 고령자에 국한되지 않고 40~50대 중년층에서도 보고되며, 과거 탄광에서 근무한 경험이 없는 주민들에게도 발생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증상들이 질병으로서 명확히 인식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반 건강검진 항목에는 폐섬유화 관련 항목이 없으며, 대부분 단순한 흉부 X선 검사로만 끝나기 때문에 조기 발견이 어렵다. 또한 실리카 노출에 대한 공식 환경조사나 공기질 모니터링이 이뤄지지 않아, 주민들은 자신의 증상이 환경적 원인에서 비롯된 것인지 확인할 방법조차 없다. 일부 보건소에서는 ‘흡연력’이나 ‘천식 병력’을 원인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어, 질병의 원인과 환경적 배경이 철저히 분리되어 해석되는 한계가 존재한다. 이러한 무관심 속에서, 마을 주민들은 조용히 건강을 잃어가고 있으며, 이는 단지 개별 건강 문제가 아니라 광산이 남긴 구조적 유해환경의 잔재로 봐야 한다.
지역 특이질병으로의 인식과 공공 대응체계의 필요성
‘실리카 유입성 만성 폐섬유화증’은 단지 폐쇄된 광산의 과거사가 아니다. 이는 오늘날까지 공기 중에 잔류하고 있는 실리카 먼지가 지역 주민의 폐를 갉아먹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질병이다. 이 질환을 지역기반 특이질병으로 분류하고 공공보건 대응체계를 마련해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첫째, 해당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고해상도 흉부 CT, 폐기능 검사, 혈중 염증지표 분석 등 정밀검진 프로그램을 정기적으로 시행해야 한다. 이를 통해 조기진단이 가능해지고, 섬유화 진행을 늦추는 치료 개입 시점이 앞당겨질 수 있다.
둘째, 폐광촌 주변 토양, 주택 내 분진, 대기 중 미세입자 내 규소 함량에 대한 정밀 환경조사가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 특히 낡은 주택 내부나 벽체 틈, 오래된 창고 등에서 실리카 입자가 재비산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생활공간의 미세먼지 측정 및 제거 사업도 중요하다. 셋째, 해당 질환이 직업 병력이 없는 일반 주민에게도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국가가 지역 환경에 기초한 질병 인식을 제도화하고, 지역 보건소나 공공의료기관이 선제적으로 진료 가이드를 마련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강원 폐광지역 전체를 대상으로 한 역학조사와 질병 모니터링 시스템 구축, 질병 피해자에 대한 치료비 지원과 거주환경 개선 등이 이뤄져야 한다. 탄광은 문을 닫았지만, 그 유산은 여전히 주민들의 폐 속에서 계속되고 있다. 우리는 그 침묵을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