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남부 플라스틱 재생공장 근로자에게 나타나는 특이질병, '미세플라스틱 흡입성 기관지염'
재생플라스틱 산업의 이면, 호흡기 질환의 급증
경기도 평택, 오산, 화성 등지에는 국내 플라스틱 재활용 산업의 핵심 인프라가 밀집되어 있다. 플라스틱 폐기물을 수거하고, 이를 분류·세척·분쇄한 후 고온으로 녹여 펠릿 형태로 재생산하는 이들 공장은 국내 순환경제 정책의 중심에 있으나, 작업환경의 안전성과 근로자 건강 문제는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최근 이 지역 재생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사이에서 지속적인 기침, 가래, 숨 가쁨, 인후통, 기관지 자극 등 만성 호흡기 증상이 빈번하게 보고되고 있으며, 일부는 폐렴 증세나 만성 기관지염 진단을 받은 경우도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오랜 기간 플라스틱 분쇄, 건조, 압출 공정에 종사했다는 것이며, 증상은 작업 중이나 직후에 심화되고, 작업을 쉬는 주말에는 상대적으로 완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특히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거나, 오래된 설비에서 고열로 재생된 플라스틱에서 나는 연기·분진에 직접 노출된 근무자일수록 증상이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산업위생 전문가들은 이를 단순한 공기 질 문제나 흡연력으로만 해석하기 어렵다고 보고, 미세플라스틱 입자의 흡입이 반복될 경우 기관지점막에 염증 반응을 일으키고, 장기적으로는 만성 기관지염으로 진행될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이러한 양상은 ‘미세플라스틱 흡입성 기관지염’이라는 새로운 특이질병군으로 분류될 수 있다.
미세플라스틱, 호흡기계에 침투하는 무형의 위협
미세플라스틱(Microplastics)은 5mm 이하의 크기를 가지는 고분자 플라스틱 조각으로, 최근에는 1μm 이하의 나노플라스틱(Nanoplastics)까지 인체 유입 가능성이 확인되고 있다. 플라스틱을 재활용하는 과정에서, 특히 고온 건조 및 압출 공정 중 열분해된 휘발성 화합물과 함께 극소형 입자가 공기 중으로 방출되며, 이는 일반 방진 마스크로도 완전히 차단되지 않는다. 해당 입자들은 점막 위에 흡착되거나, 폐 깊숙이 도달하여 점막 자극, 산화 스트레스, 염증 반응, 조직 손상을 유발한다. 특히 기관지 섬모운동을 방해하고, 염증 매개물질의 분비를 유도해 만성 기관지염이나 천식 유사 반응을 촉진할 수 있다.
영국 랭커스터대학의 연구에서는 플라스틱 분쇄 및 재활용 작업자들을 대상으로 기관지 세척액을 분석한 결과, 약 34%의 샘플에서 미세플라스틱 섬유 조각이 검출되었으며, 해당 근로자 중 상당수가 기침·천명음·호흡곤란 등의 증상을 동반한 것으로 보고되었다. 국내에서는 아직 공식적인 역학조사가 부족하지만, 2023년 한 산업의학회 포럼에서 경기 남부의 한 재생공장 근로자 46명 중 18명이 만성 기침과 폐기능 저하를 경험하고 있음이 발표되었다. 이들은 모두 고열 압출라인에서 2년 이상 근무한 이력이 있었고, 공조시설이나 국소배기 시스템이 불완전한 환경에서 작업한 공통점이 있었다. 이는 작업환경 내 미세플라스틱 입자의 상시 노출이 기관지 점막에 실질적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주는 근거다.
노동자 증언과 산업의 구조적 방치
화성시의 한 재생플라스틱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K씨(51세)는 “작업장을 들어서면 코가 화끈거리고, 하루 종일 기침이 끊이지 않는다”며 “밤에는 가래에 피가 섞이거나, 숨 쉴 때 휘파람 소리 같은 게 들릴 정도”라고 호소했다. 그는 의료기관에서 ‘만성 기관지염’ 진단을 받았지만, 흡연자라는 이유로 추가 검사는 받지 못했다. 다른 노동자 L씨는 “여름철엔 작업장 온도가 40도에 육박하고, 냄새가 고약해서 마스크를 쓰고도 버티기 힘들다”며 “연기 속에 뭔가 부유하고 있다는 느낌이 항상 든다”고 말했다. 이처럼 현장의 증상은 분명하지만, 작업장 특수성과 증상 간 인과를 밝힐 수 있는 제도적 진단 기준이나 실태 조사는 전무한 실정이다.
산업안전보건법상 플라스틱 분진은 특정유해물질로 분류되어 있지 않으며, 미세플라스틱 자체의 건강영향은 아직 법적 기준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건강검진 항목에서도 이와 관련한 내용은 포함되지 않고, 호흡기 증상이 발생해도 일반 호흡기 질환으로만 취급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대부분의 재생플라스틱 공장은 소규모 민간 사업장으로 구성되어 있어, 근로자들은 정기적인 건강검진, 보호장비 지급, 작업환경측정조차 체계적으로 받지 못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이로 인해 미세플라스틱에 장기간 노출되며 기관지염이나 천식 유사 증상을 겪고 있는 수많은 노동자들이 진단받지 못한 채 방치되고 있다.
미세플라스틱 기관지염, 특이질병으로 인정되어야 할 이유
‘미세플라스틱 흡입성 기관지염’은 이제 환경이 아닌 직업병의 영역으로 인식되어야 할 시점이다. 이는 특정 지역(경기 남부), 특정 산업군(재생플라스틱 가공), 특정 공정(열분해, 압출)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명백한 지역 기반 특이질병이다. 이를 질병으로 공인하고 제도화하려면, 우선 고위험 작업군을 대상으로 폐기능 검사, 기관지 내시경, 미세플라스틱 입자 검출 검사 등을 포함한 특수 건강검진 체계가 마련되어야 한다. 또한, 사업장 단위의 작업환경 실측 조사와 공정별 노출 평가를 통해 위험도를 등급화하고, 환기·집진 설비의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
국가 및 지자체는 이를 기반으로 미세플라스틱 직업 노출에 대한 산재 기준 신설, 예방 가이드라인 개발, 교육 프로그램 마련 등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 특히 미세플라스틱이 인체 내 장기 축적 가능성을 지닌 만큼, 단기 증상뿐 아니라 장기적 영향에 대한 코호트 추적 연구와 역학조사도 병행되어야 한다. 단순한 기침이나 가래로만 취급되던 현장의 고통은, 산업적 무관심 속에서 오랫동안 외면받아왔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도 재활용 경제의 최전선에서 건강을 내어주고 있는 노동자들이 있다는 점을 우리는 인식해야 한다. ‘미세플라스틱 흡입성 기관지염’은 대한민국 재활용 산업의 그림자이자, 제도화되지 않은 특이질병의 대표적 사례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