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조선소 도장작업자에게서 발생하는 특이질병, '유기용제 유증기 유발성 경련성 두통 증후군'
거대한 철골의 도시, 도장작업자들이 겪는 설명할 수 없는 두통
울산은 대한민국 조선업의 심장이다. 세계 최대 조선소들이 밀집해 있는 이곳은 선박 제조와 관련된 고도로 세분화된 공정이 24시간 내내 이어진다. 그중에서도 도장작업(Painting Work)은 조선의 마감 공정 중 하나로, 선체 보호를 위한 방청처리, 도료 도포, 내열·내염처리 등을 포함한다. 그러나 이 작업은 폐쇄된 공간에서 고압 분사 장비를 사용해 다량의 유기용제를 포함한 도료를 공기 중에 분무하는 환경에서 이뤄진다. 이러한 환경에서 장시간 근무한 노동자들 사이에서 최근 몇 년 사이 특이한 형태의 만성 두통, 시각 이상, 경련성 증상이 보고되고 있으며, 병원에서는 명확한 진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하루 8시간 이상 도장작업에 종사하며, 마스크를 착용하더라도 유기용제 유증기에 노출되는 빈도가 높다. 작업자들은 작업 직후 혹은 도장실에서 몇 시간 일한 후에 머리 전체를 압박하는 듯한 통증, 갑작스런 눈부심, 언어 혼란, 손 떨림, 안면 경련과 같은 증상을 호소한다. 특히 이 증상은 단순한 편두통이나 과로성 두통과 달리, 짧은 시간 강하게 나타났다 사라지는 ‘경련성 발작’ 형태로 반복되며, 장기적으로는 신경 기능 저하까지 유발하는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이를 '유기용제 유증기 유발성 경련성 두통 증후군'이라 명명하고, 울산 조선소 도장작업 환경과의 직접적 연관성을 경고하고 있다.
유기용제가 신경계에 미치는 영향, 두통의 병리학적 기전
조선소에서 도료로 주로 사용되는 물질에는 톨루엔, 자일렌, MEK(메틸에틸케톤), NMP(엔-메틸피롤리돈), IPA(이소프로필 알코올) 등의 유기용제가 포함돼 있다. 이들은 휘발성이 높고, 흡입 시 코와 폐를 거쳐 혈류를 타고 뇌에 직접 도달할 수 있다. 특히 폐쇄 공간에서 고농도로 흡입될 경우, 뇌의 신경전달물질 분비를 교란하고, 뇌혈관을 확장시키거나 수축시켜 신경계에 급성 자극을 줄 수 있다. 이로 인해 나타나는 두통은 단순한 긴장형 두통이 아니라, 자율신경계와 뇌신경 기능을 동시에 자극하는 복합 증상군의 형태를 띤다.
울산대학교 직업환경의학과에서 2023년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울산 소재 조선소 도장작업자 106명을 대상으로 한 실태 조사에서 52%가 ‘정기적인 두통’을, 28%가 ‘눈부심·구역·언어 혼란’ 등의 신경계 증상을 보고했으며, 그중 15%는 근전도 검사 결과에서 안면 또는 상지 근육의 경련 반응을 동반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유기용제의 장기 흡입이 중추신경계의 시상하부 및 미주신경계에 영향을 미쳐, 비정상적 신경흥분 상태를 유발한다고 분석했다. 이는 기존 산업보건에서 다루지 않았던 새로운 형태의 ‘경련성 두통’이라는 점에서, 울산 도장작업자만의 특이질병군으로 분류될 가능성을 제시한다.
진단되지 않는 고통, 도장작업 현장의 침묵
울산 조선소에서 12년째 도장작업을 해오고 있는 노동자 A씨는 “도장실 안에 들어가 있으면 냄새가 너무 강해 처음엔 어지럽기만 했는데, 요즘은 작업 중 갑자기 눈앞이 하얘지고, 팔이 떨리거나 숨이 막히는 증상이 자주 나타난다”고 토로했다. 그는 여러 차례 병원을 방문했지만, 편두통이나 신경쇠약 진단만 반복되었고, 유기용제 노출 여부에 대한 질문은 받은 적도 없다고 한다. 또 다른 B씨는 “마스크를 껴도 유증기가 안으로 스며드는 느낌이 있고, 하루에 두세 번씩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다”고 말했다.
이들의 공통된 고통은 진단되지 않고, 산재로도 인정받기 어렵다. 유기용제 중독증은 기존에도 존재하지만, 주로 정신신경증, 간기능 저하, 피부염 등으로 제한된 진단 코드만 존재하며, 이와 같은 ‘두통-경련형 증상군’은 체계적인 연구나 통계조차 없다. 건강검진 항목에서도 유기용제 관련 항목은 혈액·소변 검사 위주이며, 신경계 기능 검사나 뇌파, 경련 반응 검사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 결과, 울산 조선소에서 매일같이 유기용제를 흡입하며 작업하는 수많은 노동자들이 ‘원인을 알 수 없는 두통’이라는 애매한 진단만 받으며 현장을 견디고 있는 실정이다.
유기용제 유발성 경련성 두통, 특이질병으로의 지정 필요성
‘유기용제 유증기 유발성 경련성 두통 증후군’은 특정 지역(울산), 특정 직군(조선소 도장작업자), 특정 작업환경(고농도 유기용제 흡입)에 기반해 발생하는 지역기반 특이질병의 전형적 사례다. 이를 질병으로 공인하고, 근로자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선 다음과 같은 체계적 접근이 필요하다. 첫째, 도장작업자 대상 신경계 중심 건강검진 항목 신설이 시급하다. 뇌파 검사, 자율신경 반응 검사, 심박변이도 측정, 근전도 검사 등 두통과 경련 반응을 탐지할 수 있는 실질적 지표를 포함한 건강관리 체계가 필요하다.
둘째, 도장공정 환경에 대한 공기 중 유기용제 농도 정밀 측정, 개인노출량 평가, 환기 시스템 정비와 고효율 보호장비 지급 의무화가 병행되어야 한다. 셋째, 해당 질병군에 대한 역학조사와 증상 기록을 바탕으로 산재 인정 범위 확장 및 질병코드 분류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 넷째, 유기용제 노출에 따른 뇌신경계 영향에 대한 의료진 대상 교육 및 진단 가이드라인 마련도 중요하다. 단순히 두통이나 어지러움으로 치부돼왔던 현장의 고통은, 이제 ‘특이질병’이라는 이름으로 사회적, 제도적 보호의 장으로 나와야 한다. 대한민국 조선업의 위대한 기술 뒤편에는, 무색무취의 유증기 속에서 고통을 견뎌온 노동자들의 침묵이 존재한다. 우리는 그 침묵을 해석하고 응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