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이질병 스토리텔링 : 삐빅! 머릿속 폭발음, '익스플로딩 헤드 증후군'
잠들기 직전, 머릿속에서 들리는 '폭발음'의 정체
어느 날 밤, 침대에 누운 채 잠들기 직전 ‘쾅!’ 하는 굉음이 머릿속을 때리는 듯한 감각이 찾아온다면 어떤 기분일까. 더 놀라운 사실은 그 폭발음이 현실이 아닌 내 뇌 안에서만 들린 소리라는 점이다. 이런 현상을 경험한 사람들은 마치 전등이 터지거나, 번개가 뇌를 치는 듯한 착각에 빠지며, 심한 경우 극도의 공포감과 심장 두근거림을 동반하기도 한다. 이러한 증상을 유발하는 특이질병이 바로 익스플로딩 헤드 증후군(Exploding Head Syndrome, EHS)이다. 이름만 보면 매우 위험한 질환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생명에는 지장을 주지 않는 수면 관련 질환으로 분류된다.

EHS는 비교적 드물게 보고되는 특이질병이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한 번쯤은 이와 유사한 경험을 겪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외의 한 연구에서는 일반 인구의 약 10~15%가 일생에 최소 한 번은 유사 증상을 겪는다고 보고하였다. 그러나 증상이 간헐적이고 짧기 때문에 대부분은 단순한 스트레스나 우연한 신경 반응으로 오해하고 넘어가며, 병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일부 환자는 이 증상을 반복적으로 겪으면서 수면 자체에 공포를 느끼거나 불면증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뇌가 ‘잠들 준비’를 하다가 생기는 오류
익스플로딩 헤드 증후군은 아직까지 명확한 원인이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여러 학설이 제시되어 왔다. 가장 유력한 가설은 수면 전환기 뇌간의 작동 오류와 관련되어 있다. 인간은 잠들 때 뇌가 깨어 있는 상태에서 서서히 ‘수면 모드’로 전환되며, 이 과정에서 뇌의 여러 부위가 차례로 기능을 줄여나간다. 그중에서도 청각, 운동, 감각 신호를 조절하는 뇌간 부위에서 신경의 갑작스러운 과방전(hyper-synchronization)이 일어날 경우,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소리를 현실감 있게 들리도록 만들어낼 수 있다.
이러한 신경 반응은 고음의 전자음,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 유리창 파열음, 심지어 총성처럼 들릴 수 있다. 환자는 이러한 소리에 깜짝 놀라 잠에서 깨며, 극단적으로는 공황 반응이나 가슴 통증을 동반하는 경우도 보고되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이러한 증상은 몇 초 이내에 사라지고, 신체적인 손상은 전혀 남지 않는다. EEG(뇌파 검사)나 MRI를 통해도 구조적인 뇌 손상이 확인되지 않으며, 이는 EHS가 기능적 오류에 가까운 수면장애라는 점을 뒷받침한다.
정신질환과의 혼동, 그리고 불필요한 두려움
EHS의 가장 큰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이를 환청이나 정신질환의 초기 증상으로 오해한다는 점이다. 특히 처음 겪는 경우, 현실감이 너무 강해 주변에 누가 무언가를 떨어뜨리거나, 정전기가 발생한 줄 착각하는 일이 흔하다. 이러한 경험이 반복되면 환자 스스로 정신 건강 이상을 의심하게 되고, 우울, 불안, 공황 장애로 이어질 위험도 생긴다. 실제로 EHS 환자 중 상당수는 정신과보다는 신경과나 이비인후과를 먼저 방문하며, 그 과정에서 원인을 찾지 못한 채 여러 진료과를 전전하게 된다.
또한, 수면 중 발생한다는 특성 때문에 환자들은 자신이 ‘이상한 꿈을 꾼 것’이라며 증상을 축소하거나 주변에 말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진단과 연구의 장벽이 되며, 질환에 대한 사회적 인식 부족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익스플로딩 헤드 증후군은 실제로 존재하는 수면 관련 뇌신경 현상이며, 정신병적 착란과는 전혀 무관하다. 다만 심리적으로 과민하거나 수면의 질이 낮아진 상태에서 발현 가능성이 높아지므로, 생활습관 교정과 수면 환경 개선이 주요한 관리 방법으로 권장되고 있다.
치료보다 중요한 것은 인식과 대응
EHS는 현재까지 별도의 치료제가 개발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심리적 안정만으로도 증상 빈도와 강도가 감소하기 때문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질환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인식이다. 환자가 자신의 증상을 정확히 이해하고 “이것은 위협적인 병이 아니다”라는 확신을 가질 때, 수면에 대한 불안이 줄고 자연스럽게 증상이 완화되는 경향이 관찰되었다. 실제로 수면 전문가들은 이 질환을 경험한 환자에게 명확한 설명과 함께 수면 위생 수칙을 권고하고 있으며, 필요할 경우 항우울제나 항불안제의 저용량 투여로 증상 경감 효과를 보기도 하였다.
또한, 환자 스스로 수면 전 스마트폰 사용을 줄이고, 자극적인 소리나 강한 빛을 피하며, 일정한 취침 루틴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 일부 사례에서는 이완 호흡법, 명상, CBT-i(인지행동 수면 치료) 등 비약물적 접근이 증상 경감에 효과를 보인 것으로 보고되었다. 최근에는 웨어러블 뇌파 측정기를 이용한 수면 구조 분석을 통해, EHS가 나타나는 시점과 뇌 활동 패턴 간의 연관성을 정밀하게 추적하려는 연구도 시도되고 있다.
익스플로딩 헤드 증후군은 생명을 위협하는 병은 아니지만, 환자에게는 매우 혼란스럽고 공포스러운 경험이 될 수 있다. 이 질환을 단순한 착각이나 기분 탓으로 넘기기보다는, 의학적으로 설명 가능한 뇌신경 반응으로 인식하고 필요한 대응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확한 지식이 불필요한 불안을 줄이는 가장 좋은 약이 될 수 있다.
더 많은 연구와 사회적 인식이 필요한 질환
익스플로딩 헤드 증후군은 대다수 환자에게서 양성 경과를 보이며 자연 소멸되기도 하지만, 반복적으로 경험할 경우 수면의 질 저하와 삶의 전반적인 피로감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경시되어서는 안 된다. 특히 교대근무자, 수면무호흡증 환자, PTSD 이력을 가진 사람들에게서 비교적 높은 빈도로 발생하고 있다는 점은, 이 질환이 특정한 스트레스성 신경회로와 연관되어 있을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이에 따라 단순한 수면 현상이 아닌 신경계 반응의 초기 이상 신호로 주목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으며, 수면 의학과 정신의학, 뇌영상 연구 분야의 융합적 연구가 요구되고 있다. 향후 이 질환이 더 잘 이해된다면, 다른 신경계 질환의 전조를 감지하는 데도 중요한 열쇠가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