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이질병

특이질병 현장취재 : 통증을 모르는 아이들, '선천성 무통각증(CIPA)'의 두 얼굴

sudi-news 2025. 7. 29. 08:37

아픔을 느낄 수 없다는 건 축복일까, 저주일까

우리는 살면서 수없이 많은 통증을 경험한다. 화상을 입었을 때의 짜릿한 자극, 넘어졌을 때의 쑤시는 고통, 심지어 이가 시리거나 배가 아픈 감각도 모두 통증의 일종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통증은 피하고 싶은 불쾌한 감각이다. 그러나 이 통증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면 어떨까. 놀랍게도 실제로 태어날 때부터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이 앓고 있는 병이 바로 선천성 무통각증(Congenital Insensitivity to Pain with Anhidrosis, CIPA)이다. 이 병은 전 세계적으로 극히 드물며, 수백만 명 중 한 명꼴로 발생하는 초희귀 유전 질환이다.

선천성 무통각증, 통증을 못느끼는 특이질병

 

 CIPA 환자들은 심지어 뼈가 부러져도, 피부가 벗겨져도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 이론적으로만 보면 ‘고통 없는 삶’이 마치 초능력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통증은 단순히 아픈 감각이 아니라 몸의 이상을 경고하는 신호 체계이기 때문에, 이를 인지하지 못하면 오히려 생명을 위협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뜨거운 물에 손이 데이더라도 감각이 없기 때문에 계속 노출되고, 반복적인 상처나 외상으로 인해 감염과 괴사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CIPA는 ‘고통 없는 지옥’이라고도 불린다.

 

무감각은 어디까지 영향을 미치는가

 CIPA의 핵심 증상은 통증과 온도 감각의 결여이다. 그러나 이 질환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CIPA는 땀을 분비하지 못하는 자율신경 이상(Anhidrosis)도 함께 동반되며, 이로 인해 체온 조절이 불가능해지는 치명적인 문제를 발생시킨다. 인간은 열이 나거나 기온이 높을 때 땀을 흘려 체온을 조절하는데, 이 능력이 작동하지 않으면 고열로 인한 열사병, 탈수, 뇌 손상이 발생할 수 있다.

 

 또한 이 병은 피부와 말초 신경계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가려움증, 상처 치유 지연, 관절 손상 등 2차적인 신체 문제도 함께 발생한다. 특히 어린이의 경우 자해 행동이 동반되는 일이 많다. 유치가 날 때 잇몸의 가려움을 느끼지 못해 손가락을 물어뜯거나, 눈이 건조해지는 감각이 없어 자주 눈을 비비다 각막에 손상을 입기도 한다. 심한 경우에는 자신의 혀나 손끝을 반복적으로 씹어 절단하거나 감염을 유발하기도 한다. 결국 CIPA는 단순한 통증의 결여를 넘어, 감각과 자율신경이 함께 망가진 복합적인 신경 질환으로 이해해야 한다.

 

유전자 하나의 오류가 만들어낸 질병

 CIPA는 NTRK1이라는 유전자의 돌연변이로 인해 발생한다. 이 유전자는 신경성장인자 수용체를 만들며, 통증과 온도 자극을 뇌로 전달하는 신경세포의 발달과 생존에 필수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이 유전자가 비정상적으로 기능하면, 감각신경은 제대로 발달하지 못하고 결국 말초신경계가 아예 ‘통증’을 인식하지 못하게 된다.

 

 CIPA는 상염색체 열성 유전 질환이므로 부모 모두가 돌연변이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을 때 자녀에게 발현될 가능성이 존재한다. 이 때문에 가족력이 있는 경우, 산전 유전자 검사나 착상 전 유전자 진단(PGD)을 통해 질병 유무를 사전에 확인하는 사례도 점차 늘고 있다. 현재까지는 유전자 치료로 완치된 사례는 없지만, 해당 유전자의 기능을 부분적으로 보완하거나, 통증 신호를 대체하는 치료법을 연구하는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 한편, CIPA는 일반적인 진통제에 반응하지 않기 때문에 수술이나 외과적 처치가 필요할 경우 정확한 진단과 전문적 마취 관리가 필수적이다.

 

부모와 환자가 감당하는 현실적 고통

 CIPA 환자의 삶은 극도로 제약적이다. 특히 어린 시절에는 상처와 골절이 빈번하게 발생하며, 부모는 아이가 다치지 않도록 하루 24시간 내내 감시해야 한다. 어린이집이나 학교에서도 일반적인 활동이 불가능하며, 넘어지거나 부딪히는 단순한 사고조차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어떤 환아는 반복적인 발가락 골절과 감염으로 결국 절단 수술을 받았고, 또 다른 사례에서는 무릎을 꿰맨 뒤 봉합 실을 씹어 끊어버린 경우도 있었다.

 

 심리적인 문제도 크다. 아이들은 왜 자신만 아프지 않은지 이해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아픔에도 공감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는 사회성 발달에도 영향을 미치며, 감정 조절이나 또래 관계 형성에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적지 않다. 부모들 역시 의료비 부담과 심리적 고립, 양육 스트레스로 우울증이나 번아웃을 겪기도 한다. 아직까지 CIPA는 국가 희귀질환 등록 대상에는 포함되어 있지만, 지속적인 지원과 전문 돌봄 인력은 여전히 부족한 상태이다. 환자 가족들은 관련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커뮤니티와 전문가의 지속적인 상담 체계를 절실히 요구하고 있다.

 

고통이 사라진 사회는 진짜 행복할까

 선천성 무통각증은 보기 드문 병이지만, 인간 존재의 기본 감각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되돌아보게 하는 상징적 질환이기도 하다. 우리는 보통 ‘고통 없는 세상’을 꿈꾸지만, CIPA 환자들의 삶을 보면 오히려 고통이야말로 생존에 필요한 본능임을 절실히 깨닫게 된다. CIPA는 단순히 의학적 호기심이 아닌, 실제 삶의 현장에서 많은 고민과 대비가 필요한 복합 질환이다.

 

 현재까지 이 병을 완치할 수 있는 치료법은 없지만, 조기 진단과 맞춤형 관리로 합병증을 줄이고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는 가능성은 점차 높아지고 있다. 일부 연구팀은 감각신경 재건 기술, 줄기세포 치료, 뇌 신호 전기 자극 방식 등을 실험 중이며, 장기적으로는 유전자 교정기술(CRISPR)을 활용한 정밀 치료도 기대되고 있다. 또한, 관련 의료진과 연구자들은 CIPA와 유사한 감각이상 질환군을 통합하여 더 넓은 범주의 통증 치료법 개발에 착수하고 있다.

 

 선천성 무통각증은 우리에게 단순한 질병 정보 그 이상을 전해준다. 통증을 단지 불편한 감각으로 치부하지 말고, 그것이 지닌 생물학적, 인간학적 가치를 함께 이해할 때 비로소 이 특이질병을 제대로 마주할 수 있다. 아이들이 아픔을 느끼지 못해 고통받는 세상은, 결코 이상적인 사회가 아니며, 우리가 반드시 관심을 기울여야 할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