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이질병 탐사기획: 피부가 비늘로 뒤덮이다, '할레퀸 각피증'
출생과 동시에 위기를 마주하는 아이들
출생 직후, 아기의 온몸이 딱딱하게 갈라진 갑옷 같은 피부로 뒤덮여 있고, 눈꺼풀과 입술이 심하게 뒤틀린 채 움직임조차 제한된 모습이라면, 의료진은 즉시 중환자 대응 체계를 가동한다. 이처럼 극단적인 피부 변형을 보이는 신생아는 '할레퀸 각피증(Harlequin Ichthyosis)'이라는 치명적인 유전성 피부질환을 가지고 태어난다. 이 질환은 피부의 각질층이 정상보다 수십 배 이상 두꺼워지는 것이 특징으로, 격자형의 깊은 틈이 생기고, 피부의 경직으로 인해 호흡, 수유, 체온조절 등 생존에 필요한 기본 기능마저 어렵게 만든다.
‘할레퀸’이라는 이름은 중세 유럽 희극에 등장하는 마름모 무늬 의상을 입은 광대 캐릭터에서 유래했다. 병변의 격자형 갈라짐이 이 복장을 연상케 한다는 데서 붙여진 것이다. 할레퀸 각피증은 극히 드물며, 전 세계적으로 100만 명 중 1명꼴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과거에는 대부분의 환아가 출생 후 며칠을 넘기지 못했지만, 최근에는 집중 치료와 피부 관리 기술이 발전하면서 점차 생존율이 향상되고 있다. 그러나 생존 이후에도 이들은 평생에 걸쳐 강도 높은 피부 관리와 감염 예방 조치를 이어가야 한다.
유전적 결함이 만든 피부 장벽 붕괴
이 질환은 ABCA12 유전자의 돌연변이로 인해 발생한다. 이 유전자는 표피 세포 간 지질을 운반하고, 피부 장벽을 형성하는 데 필수적인 단백질 생성을 담당하는데, 돌연변이가 발생하면 각질 세포 간의 결합이 비정상적으로 진행되며 결과적으로 피부가 정상적인 탈락 주기를 거치지 못하고, 두껍고 단단한 비늘층이 겹겹이 쌓이게 된다. 피부는 신체를 외부 환경으로부터 보호하고 수분을 유지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어막이지만, 할레퀸 각피증 환자에게 이 피부는 오히려 생존을 위협하는 가장 취약한 요소가 된다.
신생아는 출생과 동시에 피부로 인한 심각한 생리적 문제에 직면한다. 눈과 입이 강제로 벌어지거나 뒤틀리는 현상이 나타나며, 손발이 피부에 의해 과도하게 조여져 혈류가 차단되는 경우도 있다. 땀샘이 정상적으로 기능하지 않아 체온조절이 어렵고, 피부 틈 사이로 세균과 바이러스가 쉽게 침투해 감염 위험이 극도로 높아진다. 피부 장벽의 붕괴는 단순한 외형의 문제가 아니라, 생명을 위협하는 전신적 위기 상황을 의미한다. 이 때문에 출생 직후부터 집중 항생제 치료, 보습 관리, 체온 모니터링 등 다학제 집중 치료가 즉시 시작되어야 한다.
생존을 위한 집중 치료와 평생 관리
과거에는 대부분의 할레퀸 각피증 신생아가 출생 직후 1주일 이내에 사망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신생아 중환자실의 체계적인 집중 치료와 함께, 항생제, 보습제, 레티노이드 계열의 약물 투여가 병행되면서 생존률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레티노이드는 각질 세포의 분화 과정을 조절해 피부가 덜 두꺼워지도록 유도하는 데 효과적이다. 출생 직후부터 하루 수 차례의 보습제 도포와 감염 예방 처치가 이뤄지며, 이 과정에서 부모와 의료진은 하루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그러나 살아남은 아이들이 성장을 거듭할수록 새로운 문제가 발생한다. 피부는 여전히 건조하고 쉽게 갈라지며, 체온 조절 능력이 떨어지고 땀이 거의 나지 않아 더위에 특히 취약하다. 겨울에는 갈라진 피부로 인해 출혈이 빈번하며, 잦은 감염과 가려움, 통증을 동반한다. 손가락과 발가락은 각질에 의해 유착되기 쉬우며, 장기적으로는 성장장애, 눈꺼풀 기형, 구강 내 건조, 귀지 배출 장애 등이 복합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 평생을 관리하며 살아가야 하는 질환이라는 점에서, 환자 본인뿐 아니라 가족 모두의 삶이 이 질병의 그림자 안에 놓이게 된다.
사회적 시선과 외모 차별의 이중 고통
할레퀸 각피증은 단지 생물학적인 질병에 그치지 않는다. 피부가 외부로 드러나는 가장 대표적인 기관이라는 점에서, 이 질병을 겪는 사람들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사회적 시선과 차별에 노출된다. 피부가 울퉁불퉁하고 붉으며 비늘처럼 갈라져 있다 보니, 대중 앞에 나서는 것이 쉽지 않고, 외출 시에도 모자, 마스크, 긴 옷으로 얼굴과 몸을 가리는 경우가 많다. 일부 어린 환자들은 또래 친구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하거나, 심한 경우 외모로 인해 시설 입소를 거부당하기도 했다.
심리적인 후유증도 상당하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 긴 시간이 필요하고, 지속적인 심리 상담과 가족의 지지가 필수적이다. 인터넷과 SNS의 발달로 일부 환자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직접 발신하며 편견을 깨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이 병을 낯설고 충격적인 이미지로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이 때문에 할레퀸 각피증은 치료보다 더 어려운 싸움, 즉 ‘존재의 당위성’을 설명해야 하는 싸움을 환자에게 강요한다.
할레퀸 각피증이 던지는 윤리적 질문들
할레퀸 각피증은 의학적으로 희귀한 유전병이지만, 이 병이 사회에 던지는 질문은 훨씬 근본적이다. 우리가 생명을 대하는 태도,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기준, 그리고 외모가 다른 사람에 대한 사회의 포용성에 대한 이야기다. 일부 부모들은 임신 중 유전자 검사를 통해 이 병을 발견하고 낙태를 선택한다. 반면 어떤 가족은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전 생애를 함께할 각오로 그를 돌본다. 그 선택의 차이 속에는 개인의 가치관과 더불어, 사회가 얼마나 이들의 존재를 존중하고 함께할 준비가 되어 있느냐는 구조적 문제가 포함되어 있다.
이 질환은 치료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의학적 개입과 더불어, 사회의 시선, 제도, 교육이 함께 변화해야 한다. 환자는 병이 아니라 ‘사람’이며, 그들의 외형은 다를지언정 존엄은 누구와도 다르지 않다. 할레퀸 각피증은 인간의 피부보다 더 깊은 곳, 바로 우리 사회의 인식과 태도, 를 비추는 거울이다. 희귀질환의 존재는 흔치 않지만, 그들이 겪는 차별과 고립은 너무나도 흔하다. 이 병에 대한 이해는 단지 의료계의 몫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감당해야 할 윤리적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