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이질병 케이스 리포트: 자는 동안 몸이 마비되는 병, '주기성 마비 증후군'(Periodic Paralysis Syndrome)
깨어나도 움직일 수 없는 아침
아침에 눈을 떴지만, 온몸이 마비되어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다면 어떤 느낌일까. 몸은 멀쩡한 것처럼 보이지만, 뇌의 명령이 사지로 전달되지 않는 그 순간, 사람들은 극심한 공포에 빠진다. 이는 단순한 ‘잠에서 덜 깼다’는 상태가 아니라, 실제로 근육이 일시적으로 마비되는 희귀질환, '주기성 마비 증후군(Periodic Paralysis Syndrome, PPS)'의 증상일 수 있다. 이 질환은 칼륨, 나트륨 등의 이온 농도 변화에 따라 신체의 근육세포가 정상적인 전기 자극을 전달하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근육 수축 기능이 갑자기 마비되는 신경-근육계 질환이다.
이 병은 대개 아침 기상 직후, 또는 운동 후 휴식 시, 과식 직후 등 특정 상황에서 발현되며, 수분에서 수 시간까지 지속될 수 있다. 가장 위험한 점은 호흡근까지 영향을 줄 경우 호흡곤란 및 생명 위협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마비는 주로 양측성으로 나타나며, 처음에는 다리나 손에 힘이 빠지는 것처럼 시작되지만, 빠르게 전신으로 확산된다. 많은 환자들이 처음엔 단순한 ‘힘빠짐 증상’으로 착각하고 진단을 놓치기 때문에, 초기 인식과 전문적인 검사 접근이 매우 중요하다.
전기 신호를 잃어버린 근육세포
주기성 마비 증후군은 근본적으로 세포막 전위의 이상 조절에서 비롯된다. 특히 칼륨 채널 또는 나트륨 채널의 기능에 관여하는 유전자(대표적으로 CACNA1S, SCN4A)에 돌연변이가 있는 경우, 근육세포는 자극에 대해 과민하게 반응하거나, 아예 반응하지 않는 상태에 빠지게 된다. 결과적으로 전기적 신호가 근육세포로 전달되지 못하고, 이는 곧 급성 근력 저하 혹은 완전 마비로 나타난다.
주기성 마비는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된다: 고칼륨형(hyperkalemic), 저칼륨형(hypokalemic), 그리고 정상칼륨형(normokalemic)이다. 각각 혈액 내 칼륨 농도와 발작 관계에 따라 나뉘며, 가장 흔한 것은 저칼륨형이다. 저칼륨형 환자는 식사 후 인슐린 분비 증가로 혈중 칼륨이 감소할 때 마비를 경험하는 반면, 고칼륨형은 단식이나 휴식 시 칼륨 농도가 높아지면서 증상이 발생한다. 이처럼 같은 질환 안에서도 유형에 따라 식습관, 약물 사용, 운동 패턴 등이 다르게 관리되어야 하며, 환자의 개인 특성을 기반으로 한 정밀진단이 중요하다.
일상 속 위기, 놓치기 쉬운 초기 신호들
주기성 마비는 매우 드문 질환으로, 전 세계적으로 수천 명 내외의 환자만이 보고되어 있을 만큼 희귀하지만, 실제로는 진단되지 못한 채 살아가는 경증 환자들이 더 많을 가능성도 있다. 이 질환은 갑작스러운 마비 발작 외에는 평소 건강한 신체 상태를 유지하기 때문에, 초기에 병을 인식하지 못하고 오랜 시간 오진되기 쉽다. 특히 어린 시절 ‘힘이 빠지는 증상’이나 ‘기면증’, ‘불안장애’로 착각되며 정신과 치료를 받는 사례도 있다.
또한 일부 환자들은 단순히 “운동을 너무 많이 했다”거나 “어지럽고 무기력한 날” 정도로 치부하고 넘어가며, 정작 병이 악화된 후에야 전문 진료를 받는다. 하지만 마비가 반복될수록 근육은 점점 약화되고, 영구적인 근위축이나 보행 장애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혈중 칼륨 수치의 급격한 변동은 심장 부정맥을 유발할 수 있어, 생명을 위협하는 응급상황으로도 발전할 수 있다. 따라서 작은 마비 증상이라도 반복되거나 특정 상황에서 재현된다면, 반드시 근전도 검사, 혈액 이온 검사, 유전자 검사를 통해 정확한 진단이 이뤄져야 한다.
약물 치료와 생활요법의 병행이 핵심
현재 주기성 마비 증후군은 완치 가능한 질병은 아니지만, 적절한 약물 치료와 생활관리만으로 발작의 빈도와 강도를 효과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 주요 치료 약물로는 칼륨 보충제, 카보니크 안히드레이즈 억제제(예: 아세타졸아미드), 베타차단제, 또는 특정 전해질 조절제를 사용하며, 환자의 유형에 따라 정확히 처방되어야 한다. 특히 고칼륨형과 저칼륨형은 칼륨 섭취 방향이 정반대이므로, 임의의 보충제 복용은 오히려 위험할 수 있다.
약물 외에도 식이 조절, 수면 주기 안정화, 스트레스 회피, 규칙적 수분 섭취, 무리한 운동 회피 등 일상 속 관리가 핵심이다. 일부 환자들은 혈중 전해질 변화를 실시간 모니터링할 수 있는 웨어러블 기기를 활용하기도 하며, 의료진과 함께 ‘위기 상황 대응 플랜’을 마련하는 것도 효과적이다. 특히 환자 스스로 유발 인자를 기록하고 회피 전략을 세우는 자가관리 일지는 치료의 중요한 도구로 활용된다.
보이지 않는 병, 인식과 공감의 시작
주기성 마비 증후군은 외형적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주변의 이해를 얻기가 쉽지 않다. 발작이 없을 땐 멀쩡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발작 시에는 아무런 움직임도 할 수 없는 극단적인 변화가 반복되므로, ‘핑계’, ‘게으름’, ‘정신적 문제’로 오해받는 일이 많다. 이로 인해 환자들은 심리적인 위축과 자존감 저하, 사회적 고립까지 겪게 된다. 특히 직장이나 학교에서 발작을 겪는 경우, 신뢰도와 능력을 의심받는 이중고를 겪기도 한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환자들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경험을 공유하고, 희귀질환 인식 증진 활동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또한 일부 국가는 희귀질환으로 등록하여 의료비 지원과 약제 접근성을 확대하고 있으며, 유전자 치료 가능성을 탐색하는 임상 연구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주기성 마비 증후군은 단지 근육 마비의 문제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병’에 대한 사회의 인식 수준을 가늠하게 하는 잣대다. 이들의 삶을 마비시키는 건 병 자체가 아니라, 이해 없는 시선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