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이질병 리포트: 땀이 멈추지 않는 병, '국소 다한증' (Focal Hyperhidrosis)
일상은 “미끄러운 손바닥”에서 시작된다
국소 다한증은 체온 조절에 필요한 범위를 훨씬 넘어선 땀 분비가 손바닥·발바닥·겨드랑이·얼굴 등 특정 부위에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희귀성 자율신경 질환이다. 전 세계 유병률은 1 ~ 3 %로 추정되지만, 경미한 경우에는 병으로 인식하지 못해 보고율이 낮다. 환자 대부분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볼펜이 미끄러져 글씨가 번지는 경험”이나 “게임기를 잡자마자 버튼이 젖는 당혹감”을 겪으면서 자신의 몸이 남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자각한다. 땀샘 자체에 구조적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뇌-척수에서 땀샘으로 향하는 교감신경이 외부 자극에 과도하게 흥분한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긴장이 조금만 높아져도 분비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밤에는 멀쩡하지만 낮에는 홍수가 터지는 듯한 “시간대 불균형”도 흔하다. 질환 자체가 생명을 위협하지는 않지만, 생활 모든 장면에서 ‘미끄러움·습기·냄새’라는 3중 스트레스를 동반해 심리적 고통이 크다.
교감신경의 브레이크가 고장 난 이유
국소 다한증의 핵심 병리는 “에크린 한선에 도달한 교감신경 말단에서 아세틸콜린이 과도하게 분비된다”는 점이다. 정확한 유전자는 아직 규명되지 않았지만, 가족 내 발병 비율이 30 %를 넘는 것으로 보아 상염색체 우성 패턴이 유력하다. 피부전기반응(EDA)을 측정하면 일반인 대비 3 ~ 5배 이상 높은 피부 도전도를 보이며, 이는 곧 땀샘의 항시 준비 태세를 의미한다. 한편 시상하부-수의적 피질 네트워크에 관여하는 KCNK채널 군과 β-아드레날린 수용체 다형성이 과민 신경흥분과 연관 있다는 연구도 발표됐다. 특히 손바닥·발바닥에 집중된 땀샘 분포와 감각 피질의 연결 고리는 “오래된 투쟁-도피 반응의 잔재”라는 진화생물학적 가설로도 설명된다. 땀 자체는 무취지만, 표피 미생물이 분해하면 불쾌한 냄새를 만들어 사회적 곤란을 배가시킨다. 결국 돋보이지 않는 신경 화학의 과열이 환자의 삶을 끊임없이 물바다로 만든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사회적 낙인
국소 다한증 환자가 처음 병원을 찾는 계기는 대체로 “악수 공포”다. 면접‧소개팅‧발표 직전 손에서 땀이 뚝뚝 떨어지면 상대방은 불결함이나 긴장과다로 오해하기 쉽다. 학교에서는 시험지에 잉크가 번져 감점당하고, 회사에서는 키보드가 젖어 장비 고장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겨드랑이형 환자는 셔츠가 한 시간 만에 젖어 “체취 관리 실패”라는 낙인을 감수한다. 발바닥형은 슬리퍼가 미끄러워 넘어지거나, 신발이 항상 축축해 세균성 무좀 위험이 높다. 지속적 불안은 회피 행동과 사회공포증으로 이어져, 실제 연구에서 환자 40 % 이상이 우울장애 또는 대인기피증을 동반하는 것으로 보고됐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나는 것은 단지 땀일 뿐이어서 주변 사람들은 “예민해서 그래”, “물 많이 마신 탓”이라며 별것 아닌 현상으로 치부한다. 질병이 아닌 습관쯤으로 여기는 무지가 치료 지연의 가장 큰 벽이다.
치료 스펙트럼: 데오드란트에서 수술까지
국소 다한증 치료는 ‘얕은 선택’부터 ‘깊은 개입’까지 단계적으로 존재한다. 첫 단계는 20 % 이상 알루미늄 염이 함유된 항한선제로, 땀샘 관을 일시적으로 막아 분비량을 줄인다. 효과가 부족하면 이온영동법을 이용해 손·발 피부에 약한 전류를 흘려 한선 기능을 일시 차단한다. 그다음 단계가 보툴리눔 톡신 주사다. 아세틸콜린 분비를 차단해 4 ~ 6개월간 땀을 억제하지만, 손바닥 주입 시 통증과 비용 부담이 크다. 경구용 항콜린제나 베타차단제는 전신 부작용(구갈, 눈부심, 빈맥) 탓에 장기복용이 어렵다. 최후의 선택은 흉부교감신경 절제술(ETS)이다. 쇄골 위에 5 mm 내시경을 넣어 교감신경절을 절단하거나 클립으로 막아버린다. 성공률은 90 % 이상이지만, 절반 가까이 보상성 다한증(등·허벅지 과다발한)이 발생해 삶의 질이 오히려 악화하기도 한다. 요즘은 고주파 열응고, 레이저 교감신경 파괴 같은 미세침습 기법과 경피 집중 초음파 등 신기술도 시험 중이다. 치료는 완치가 아니라 ‘불편을 조율하는 과정’이란 점을 환자와 의료진 모두 이해해야 한다.
“단지 땀일 뿐”이라 말하지 않기 위해
국소 다한증은 생명을 직접 위협하지 않는다. 그러나 “젖은 종이 한 장”이 반복해서 쌓이면 책 전체가 훼손되듯, 매일 이어지는 불편은 환자의 자존감과 사회적 기회를 갉아먹는다. 이 질병은 우리에게 건강의 정의가 단순한 생존이 아니라 정상적인 사회 관계와 자신감까지 포함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기술은 꾸준히 발전하고 있지만, 치료 접근성은 지역·경제력·정보 격차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지금도 많은 환자들이 피부과 진료를 ‘미용 절차’로 오해하거나, 고가의 톡신 치료 비용에 포기 의사를 밝힌다. 국가·보험기관·기업 차원의 비급여 치료 보장 확대, 학교·직장에서의 인식 개선 교육, 온라인 자조모임 등이 병행돼야 한다. 땀을 통제하지 못하는 것은 태도의 문제가 아니라 신경계가 내리는 명령이라는 점을 사회가 이해할 때, 국소 다한증 환자들은 비로소 젖은 손을 숨기지 않고 일상을 설계할 수 있다.
이와 함께 국소 다한증은 신체와 정서, 환경의 접점에서 발생하는 질환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 외부 온도, 사회적 긴장, 신경계 흥분도가 맞물려 작용하기 때문에, 단일한 치료나 접근 방식으로는 완전한 해소가 어렵다. 따라서 정신건강 전문가와 피부과, 신경과, 직업상담사가 함께하는 다학제 진료 체계가 필요하다. 또한, 다한증 환자에게는 진단서 한 장이 단순한 종이가 아니다. 시험 중 자필 답안 작성 배려, 구직 과정에서의 차별 방지, 제약 없는 복장 선택 등의 생활 맞춤형 배려가 법적·제도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땀이 만든 불편은 당사자만의 문제가 아니며, 우리 사회가 개인의 불편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 묻는 공동체의 윤리적 과제다. 이제는 “그 정도는 참을 수 있잖아”라는 말 대신, “불편한 건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사회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