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이질병

특이질병 케이스파일: 얼굴이 마비되는 순간, '람세이헌트 증후군'(Ramsay Hunt Syndrome)

sudi-news 2025. 8. 7. 07:45

갑작스러운 얼굴 마비의 공포

 어느 날 아침, 거울을 보던 한 사람이 자신의 얼굴 한쪽이 전혀 움직이지 않는 것을 발견한다. 눈이 감기지 않고, 입꼬리는 축 처졌으며, 물을 마시면 입 한쪽으로 줄줄 흘러내린다. 흔히 이런 증상을 보고 사람들은 ‘벨마비(Bell’s palsy)’를 떠올리지만, 유사한 안면신경마비 증상을 보이는 또 다른 질환이 있다. 바로 람세이헌트 증후군(Ramsay Hunt Syndrome)이다. 이는 수두-대상포진 바이러스(Varicella-Zoster Virus, VZV)가 얼굴신경을 침범해 발생하는 신경계 감염 질환이다. 전형적인 증상은 안면 마비와 함께 귀 안팎의 물집, 통증, 청력 저하, 이명, 균형감각 장애 등이 동반되는 것이 특징이다.

 

람세이헌트 증후군, 갑작스레 얼굴이 마비되는 특이질병

 

 람세이헌트 증후군은 1907년 신경학자인 제임스 람세이 헌트에 의해 처음 기술됐으며, 그 이름을 따왔다. 일반 대상포진과는 달리 이 질환은 귀와 인접한 뇌신경을 직접 공격한다는 점에서 매우 특이한 경로를 가진다. 수두를 앓았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잠복된 VZV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으며, 이 바이러스가 면역력이 약해졌을 때 재활성화되면서 람세이헌트 증후군이 발병할 수 있다. 특히 최근에는 가수 저스틴 비버가 이 질병을 공개하며 대중적으로도 알려지기 시작했다. 얼굴이 일그러지고, 말이 어눌해지며, 일상생활에 큰 지장을 주는 이 병은 생각보다 더 자주, 그리고 더 조용히 찾아온다.

 

대상포진의 얼굴 침공, 무엇이 다른가

 람세이헌트 증후군은 본질적으로 대상포진 바이러스의 한 형태다. 대상포진이 일반적으로 몸의 신경을 따라 피부에 발진과 통증을 일으킨다면, 람세이헌트 증후군은 7번 뇌신경인 안면신경(facial nerve)을 따라 이동하여, 귀와 혀, 안면 근육을 조절하는 부위를 침범한다. 이로 인해 환자는 단순한 안면 마비 외에도 미각 이상, 눈물 분비 장애, 침 분비 저하, 이명, 현기증, 심한 귀 통증을 겪게 된다. 특히 이개(귀 바깥쪽)에 수포성 발진이 동반되는 것이 가장 대표적인 구별점이다. 일부 환자들은 귀 수포 없이도 마비가 발생하는 경우도 있어, 증상만으로 단순한 벨마비로 오진되는 일이 잦다.

 

 벨마비는 대부분 바이러스성 안면신경염으로 예후가 좋고 자연회복이 가능한 경우가 많지만, 람세이헌트 증후군은 훨씬 더 공격적이며 회복율도 낮다. 실제로 람세이헌트 증후군의 안면신경 회복률은 약 50~70%에 불과하며, 치료가 늦어질수록 영구적인 마비나 청력 손실 위험이 커진다. 따라서 빠른 감별과 조기 치료가 생명을 살리는 열쇠가 된다. 또한 청신경(8번 뇌신경)까지 침범되면 청력 손실과 심한 어지럼증을 동반하며, 이는 환자의 삶의 질을 급격히 떨어뜨린다. 이처럼 같은 안면마비라도, 원인과 경과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바이러스의 잠복성과 면역력의 함수

 람세이헌트 증후군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잠복 감염의 재활성화이다. 어릴 적 수두를 앓았던 사람의 몸속에는 해당 바이러스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척수 및 신경절의 신경세포 내에 잠복해 있다가, 면역력이 떨어질 때 다시 활성화된다. 이처럼 몸속에 ‘잠자는 적’이 다시 깨어나 안면신경을 공격하면서 병이 발생한다. 고령자나 당뇨병, 암 치료 중인 환자처럼 면역이 저하된 사람에게서 더 자주 발생하지만, 스트레스, 과로, 과도한 음주나 수면 부족 등으로 면역력이 일시적으로 떨어진 젊은 성인에게도 나타날 수 있다.

 

 현대인의 라이프스타일은 만성 피로와 수면 부족, 영양 불균형 등 면역력을 약화시키는 요소로 가득하다. 때문에 람세이헌트 증후군은 더 이상 노인성 질환이나 희귀 감염병으로만 분류할 수 없다. 특히 청장년층에서 이 질환이 발생하면 사회활동에 중대한 제한이 생기며, 안면마비로 인한 심리적 위축, 대인기피, 우울증까지 동반되기도 한다. 바이러스 자체보다도, 면역 체계의 허점이 이 병의 진짜 틈새라는 점에서, 예방법은 단순히 백신 접종에 그치지 않고 생활 습관과 면역 관리 전반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골든타임은 72시간, 치료는 시간과의 싸움

 람세이헌트 증후군은 진단과 치료의 속도가 예후를 좌우하는 대표적인 질환이다. 첫 증상 발생 후 72시간 이내에 항바이러스제(아시클로버 등)와 고용량 스테로이드를 병용 투여하는 것이 표준 치료이며, 이 ‘골든타임’을 넘기면 신경 손상이 영구화될 수 있다. 또한 이개 내 수포가 없다 하더라도, 귀 통증과 안면 마비가 동시에 발생하는 경우에는 람세이헌트를 의심하고 신경과 혹은 이비인후과의 감별진단을 받아야 한다.

 

 치료 후에도 회복은 수주에서 수개월까지 걸릴 수 있으며, 회복 정도 역시 사람마다 다르다. 일부 환자는 안면 비대칭이 남거나, 표정 근육이 불규칙하게 움직이는 운동 동기화 장애(synkinesis)가 남는 경우도 있다. 또한 청력 손실이 영구적일 수 있어 조기 청력검사가 필수다. 이처럼 치료 시점과 방식에 따라 환자의 삶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는 병이기에, 정확한 진단 프로토콜과 대중 인식 향상, 일선 의료진의 경험 축적이 필수적이다. 단순한 얼굴 마비로 치부하고 넘어가기엔, 이 병이 주는 파장은 너무 크다.

 

얼굴은 몸의 언어다, 표정을 지키기 위한 사회적 관심

 람세이헌트 증후군은 단순히 의학적 질병이 아니라, 사람의 인상과 감정을 일시에 빼앗는 병이다. 환자는 단지 음식을 먹거나 말을 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만이 아니라, 거울 속 자신의 얼굴에서 낯선 표정을 마주하게 된다. 눈이 감기지 않아 시야가 건조해지고, 입꼬리를 올릴 수 없어 미소가 사라지는 것은 신체 기능의 문제이자 사회적 상호작용의 단절로 이어진다. 특히 직업적으로 얼굴 표정이 중요한 사람들, 예를 들어 연예인, 교사, 상담사 등은 이 병이 직업적 정체성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람세이헌트 증후군에 대한 정보는 부족하고, 오해는 많다. 단순히 벨마비와 혼동되거나, 스트레스성 안면 경련 정도로 치부되며 병의 심각성이 간과된다. 또 외형의 급변이 주변의 호기심이나 불필요한 동정심을 자극해 환자의 정신적 부담을 가중시키기도 한다. 이 병을 겪은 사람들이 감정을 표현하는 능력을 잃지 않고 사회 속에서 존중받기 위해서, 단지 치료법의 개발을 넘어서서 표정의 사회적 가치와 감정의 권리에 대한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 얼굴은 단순한 근육의 배열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존재를 설명하는, 가장 정직한 언어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