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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질병 케이스파일: 몸이 녹아내리는 병, '피부괴사성 근막염(Necrotizing Fasciitis)'

sudi-news 2025. 8. 7. 22:54

갑작스러운 통증, 일상 속의 치명적 감염

피부에 가벼운 상처가 난 것을 대수롭지 않게 넘긴 사람이 다음 날, 극심한 통증과 함께 고열, 부기, 멍 자국 같은 변색이 퍼지는 것을 경험한다. 의료진이 확인했을 때는 이미 피부 안쪽 근막이 괴사되기 시작했고, 단 몇 시간 사이에 생명을 위협하는 감염으로 번져버렸다. 이처럼 일상적인 찰과상이나 벌레 물림, 주사 자국조차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극단적인 감염질환, 그것이 바로 '피부괴사성 근막염(Necrotizing Fasciitis)'이다. 이 병은 매우 빠른 속도로 퍼지며 근막(fascia)을 중심으로 주변 근육, 지방, 피부 조직까지 괴사시킨다.

피부괴사성 근막염, 갑작스럽게 피부가 괴사되는 특이질병

 

 피부괴사성 근막염은 흔히 “살을 먹는 박테리아(flesh-eating bacteria)”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실제로 그 명칭처럼 빠르게 조직을 파괴하고 환자의 생명을 앗아간다. 감염이 발생한 부위는 짧은 시간 안에 부풀고, 검푸른 색으로 변하며, 피부 표면에는 수포나 혈성 분비물이 생기기도 한다. 통증은 일반적인 세균 감염보다 훨씬 심하며, 진통제를 사용해도 잘 조절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특히 초기에 증상이 모호하게 시작되기 때문에, 단순한 염증이나 벌레 물림으로 오해하고 병원 방문을 미루는 경우가 많아 조기 진단과 대응이 생명을 가르는 결정적 요소가 된다.

 

누구나 감염될 수 있는 감염성 응급질환

 피부괴사성 근막염은 특정 병원균 한 가지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종류의 세균이 단독 또는 복합적으로 감염을 일으키며, 대표적인 원인균으로는 연쇄상구균(Streptococcus pyogenes), 황색포도상구균(Staphylococcus aureus), 클로스트리디움균(Clostridium spp.) 등이 있다. 특히 독소를 분비하는 A군 연쇄상구균은 빠르게 조직을 파괴하고 패혈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가장 위험한 병원체 중 하나다. 병원균이 근막층을 따라 빠르게 퍼지는 이유는 이 부위가 혈액 공급이 적어 면역세포의 접근이 어렵기 때문이다.

 

 감염은 외상, 수술 부위, 욕창, 찰과상, 벌레 물림, 관절 주사나 침습성 치료 등 여러 경로로 침투할 수 있으며, 건강한 사람에게도 발생할 수 있지만 면역력이 저하된 사람에게서 특히 치명적이다. 당뇨병, 간경화, 암, 신장투석, 스테로이드 복용 중인 환자 등은 고위험군으로 분류된다. 감염은 주로 팔, 다리, 복부 등에 생기지만, 드물게는 얼굴이나 회음부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 이 질환의 공포는 감염 부위가 수 시간 내로 퍼지고, 24시간 이내 절단이나 사망에 이를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크다. 실제로 피부괴사성 근막염의 사망률은 치료 시기를 놓칠 경우 30~50%에 이르며, 병원 내 응급감염질환 중에서도 가장 치명적인 부류에 속한다.

 

통증, 붓기, 멍 — 단서를 놓치지 말아야

 피부괴사성 근막염은 초기 증상이 비특이적이어서 일반 감염이나 피부질환과 혼동되기 쉽다. 가장 흔한 증상은 심한 통증과 함께 해당 부위의 부기, 발적, 열감, 멍처럼 보이는 피부변색이다.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상처의 외형보다 통증이 훨씬 심하다는 점인데, 이는 피부 아래 근막과 근육이 빠르게 괴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 피부 위로 수포나 괴사 부위가 올라오고, 검은색 혹은 보랏빛으로 변색되며 악취가 동반될 수 있다. 전신 증상으로는 고열, 오한, 혈압 저하, 구토, 의식 저하, 빈호흡 등이 나타난다.

 

 초기에는 단순한 셀룰라이트(연조직 감염)나 피부염으로 오인될 수 있어 진단이 늦어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의심 증상이 있다면 곧바로 혈액검사, 염증 수치(CRP, WBC), 영상 촬영(CT, MRI), 세균배양 등을 통해 감별 진단을 받아야 한다. 특히 부위가 빠르게 퍼지거나 통증이 비정상적으로 심한 경우, 피부괴사성 근막염을 가장 먼저 염두에 두는 것이 중요하다. 일부 사례에서는 조직 속에서 기체가 생성되어 피부가 부풀거나 찌릿한 느낌을 동반하는데, 이는 기체괴저(Gas gangrene)로 진행 중인 신호일 수 있어 즉각적인 외과 개입이 필요하다. 진단이 늦어질수록 생존율은 급격히 낮아진다.

 

외과적 절제가 생명을 구하는 핵심

 피부괴사성 근막염의 치료는 의학적 응급상황 중에서도 가장 공격적이어야 하는 부류에 속한다. 치료의 핵심은 빠른 외과적 절제수술(debridement)로, 괴사된 조직을 가능한 한 광범위하게 제거해야 세균의 확산을 막을 수 있다. 수술은 단 1회로 끝나지 않고, 감염이 퍼지는 경로에 따라 수차례 반복되는 경우가 많다. 동시에 고용량 광범위 항생제(3세대 세팔로스포린, 클린다마이신, 메트로니다졸 등)를 정맥 주사하고, 필요 시에는 면역글로불린(IVIG) 등의 항독소 요법이 병행된다.

 

 패혈증이 발생한 경우에는 중환자실에서의 집중 치료가 필요하며, 호흡기, 심혈관, 신장 등 장기기능을 보조하는 치료까지 요구될 수 있다. 피부괴사성 근막염은 치료 시점이 늦으면 절단 수술이 불가피해지고, 심한 경우 수술 중에도 사망에 이를 수 있다. 회복 후에도 광범위한 조직 손상으로 인해 피부이식, 재건 수술, 장기 재활이 필요하며,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 우울증을 겪는 환자들도 많다. 따라서 감염의 조기 인식과 적극적인 치료는 생명뿐 아니라 환자의 미래 삶의 질을 좌우하는 요소다.

 

“위험한 감염은 늘 가까이에 있다”

 피부괴사성 근막염은 생소하지만,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현실적인 감염질환이다. 특히 여름철 해수욕장이나 수영장에서 피부에 상처가 난 상태로 바닷물에 노출되었을 때 비브리오균에 의한 감염이 급속히 퍼질 수 있으며, 이 또한 피부괴사성 근막염으로 발전할 수 있다. 수술 부위나 욕창, 당뇨발 같은 만성 상처가 있는 환자들은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감염은 절대 먼 곳에 있는 위험이 아니다. 일상 속 피부의 작은 틈도 치명적인 균의 침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예방이다.

 

 예방을 위해서는 상처를 청결하게 관리하고, 감염 가능성이 있는 환경(오염된 물, 공사현장, 동물 접촉 등)에서는 상처를 보호할 수 있는 복장과 장비를 착용해야 한다. 면역저하자는 항생제 예방 투여가 필요한 상황도 있으며, 작은 상처에도 열, 부기, 통증이 있다면 곧바로 병원을 찾아야 한다. 의료기관에서도 조기 진단을 위한 의심 지표를 갖추고, 진료 초기 단계부터 감염질환에 대한 민감도를 높여야 한다. 피부괴사성 근막염은 빠르게 치료하지 않으면 단 하루만에 죽음에 이를 수 있는 질환이다. 하지만 그만큼, 빠르게 인식하고 대처한다면 막을 수 있는 질병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