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이질병 케이스파일: 팔과 다리가 동시에 마비되는 병, '길랭-바레 증후군(Guillain-Barré Syndrome)'
갑작스레 무너지는 사지의 힘
하루아침에 걸을 수 없게 된다면 어떨까? 멀쩡하던 사람이 며칠 사이에 걷는 것은 물론, 팔을 들거나 심지어 호흡하는 것까지 어려워진다면, 그 충격은 상상 이상일 것이다. 길랭-바레 증후군(Guillain-Barré Syndrome)은 실제로 그런 경험을 하게 만드는 대표적인 급성 신경계 특이질환이다. 주로 바이러스 감염이나 예방접종, 수술 등 특정한 면역 반응 이후, 우리 몸의 면역계가 실수로 말초신경을 공격하면서 마비 증상이 진행되는 자가면역성 질환이다.
초기에는 양쪽 다리의 저림, 근력 약화, 이상 감각으로 시작되는 경우가 많고, 이 증상은 빠르게 팔, 상체, 심지어 호흡근육이나 안면신경까지 마비시키기도 한다. 감각 이상, 반사저하, 불균형 등이 동반되며, 증상 발현 후 일주일에서 4주 이내에 가장 심한 상태에 이른다. 그 속도가 매우 빨라 급성기에는 중환자실 치료가 필요한 경우도 많으며, 전체 환자의 약 25%는 인공호흡기 지원이 필요할 정도로 진행된다. 이처럼 길랭-바레 증후군은 단순한 신경 질환을 넘어,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중증 질환으로 분류된다.
면역체계의 반란, 왜 신경을 공격할까?
길랭-바레 증후군의 정확한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면역계가 말초신경을 외부 침입자로 오인하여 공격하는 교차반응(cross-reaction)이 주된 기전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캠필로박터 제주니(Campylobacter jejuni)라는 세균 감염이 질환의 가장 흔한 유발 인자로 꼽힌다. 그 외에도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EBV, CMV, HIV, 지카 바이러스, 코로나19 등 여러 감염성 질환과 백신 접종 후 발병한 사례도 보고되고 있다.
이러한 면역 반응은 신경세포를 둘러싼 수초(myelin sheath)를 손상시키거나, 신경축삭 자체를 공격해 신경의 전기적 전달을 방해하게 된다. 이로 인해 근육에 명령을 전달하지 못하고, 근력 약화와 마비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길랭-바레 증후군은 이러한 병리 기전에 따라 탈수초형(acute inflammatory demyelinating polyradiculoneuropathy, AIDP)과 축삭형(AMAN, AMSAN) 등 여러 하위 유형으로 구분된다. 탈수초형은 미국과 유럽에서, 축삭형은 아시아 및 중남미 지역에서 상대적으로 흔히 나타난다. 유형에 따라 예후와 회복 속도, 치료 반응이 달라지기 때문에 정확한 분류가 중요하다.
진단의 핵심은 임상 경과와 전기생리 검사
길랭-바레 증후군은 혈액검사나 영상검사만으로는 진단이 어렵고, 병력 청취와 신경학적 검사, 전기생리 검사 등이 필요하다. 주된 진단 기준은 대칭성 사지 근력 저하, 심부건반사 감소 또는 소실, 진행성 증상, 감각이상 동반 여부 등이다. 증상 발현 시점부터의 시간 경과와 호흡근 마비 또는 자율신경계 이상 여부도 진단 및 중증도 평가에 중요하게 작용한다.
보다 정밀한 진단을 위해 시행되는 검사는 뇌척수액(CSF) 검사와 신경전도검사(NCV)다. 뇌척수액 검사에서는 세포 수는 정상이지만 단백질 농도는 증가한 특유의 ‘단백-세포 분리 현상’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신경전도검사는 손상된 신경의 전도 속도와 반응성을 측정해 탈수초 여부 및 손상의 범위를 파악할 수 있다. 이러한 검사는 감별 진단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며, 척수염, 다발성 경화증, 중증근무력증, 전해질 이상 등 유사 질환과의 구별에 도움이 된다.
치료의 핵심은 빠른 대응과 면역 조절
길랭-바레 증후군은 초기에 빠르게 진단하고 치료하지 않으면, 영구적인 신경 손상이나 생명 위협까지 이어질 수 있다. 치료는 주로 면역 반응을 조절하고 증상의 진행을 멈추는 데 중점을 둔다. 대표적인 치료법은 정맥용 면역글로불린(IVIG)과 혈장교환술(plasmapheresis)이다. 두 방법 모두 자가항체를 중화하거나 제거하여 신경 손상을 줄이는 방식이다.
IVIG는 5일간 고용량으로 투여되며, 대부분의 환자에서 진행을 멈추고 회복을 유도할 수 있다. 혈장교환술은 일정량의 혈장을 제거하고 새로운 혈장으로 교체함으로써 순환 중인 자가항체와 염증 매개 물질을 제거하는 치료다. 중증 환자일수록 조기 개입이 중요하며, 호흡 마비 예방을 위한 폐기능 모니터링, 자율신경계 이상 감시, 물리치료와 재활 등이 병행돼야 한다. 회복까지는 수개월에서 수년이 걸릴 수 있고, 일부 환자는 만성 후유증을 남기기도 한다. 하지만 조기 진단과 적극적인 치료로 80% 이상의 환자가 독립적인 일상생활로 복귀할 수 있다.
재활과 감시, 그리고 후유증 관리의 중요성
길랭-바레 증후군의 치료는 병원에서 끝나지 않는다. 환자 대부분은 마비된 근육을 회복시키기 위한 재활치료가 반드시 필요하다. 보행 훈련, 균형 훈련, 일상생활 적응 훈련 등을 통해 서서히 기능을 되찾게 되며, 이 과정은 환자의 의지와 가족의 지지, 의료진의 전문성이 함께 작용해야 한다. 특히 장기적인 감각 이상, 피로감, 근력 저하 등 잔여 증상(residual symptoms)을 경험하는 환자도 많아, 회복기 이후에도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또한 일부 환자에서는 회복 후 재발이나 만성 진행성 길랭-바레 증후군(Chronic inflammatory demyelinating polyneuropathy, CIDP)으로 전환되는 경우도 있으므로 정기적인 추적 관찰이 권장된다. CIDP는 서서히 진행되는 형태로, 길랭-바레와 유사하지만 만성적인 면역 억제 치료가 필요하다. 따라서 초기 진단 시부터 장기적 예후를 염두에 둔 접근이 중요하다. 길랭-바레 증후군은 극단적인 증상을 보이지만, 면역의 오작동을 제어하고 신경 회복을 도우면 상당한 수준까지 회복이 가능한 질병이다. 조기 인지와 대응, 그리고 지속적인 관리가 환자의 삶을 지키는 핵심 열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