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이질병 인사이트: 혈관이 꼬이듯 막히는 병, '섬유근이형성증(Fibromuscular Dysplasia)'
혈관이 비정상적으로 자라나는 병의 정체
섬유근이형성증(Fibromuscular Dysplasia, FMD)은 혈관 벽의 비정상적인 성장과 구조 변형으로 인해 동맥이 좁아지거나 확장되는 희귀 혈관 질환이다. 주로 신장동맥과 경동맥 같은 중간 크기의 동맥에 발생하며, 혈관 벽이 ‘끈 모양’ 또는 ‘비드(구슬) 모양’으로 변형되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변형은 혈액 흐름을 방해해 해당 부위의 장기 기능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신장동맥이 좁아지면 신장으로 가는 혈류가 감소해 신성 고혈압이 발생하고, 경동맥이 영향을 받으면 뇌로 가는 혈류가 줄어 일과성 허혈 발작(TIA)이나 뇌졸중 위험이 커진다.
이 질환은 남성보다 여성에서 훨씬 흔하며, 특히 30~50대 여성에서 발병률이 높다. 그러나 모든 연령과 성별에서 발생 가능하며, 최근에는 정기 건강검진과 영상 기술 발달로 무증상 상태에서 발견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문제는 초기 단계에서 특별한 자각 증상이 없거나 두통, 어지럼증, 혈압 상승 등 흔한 증상만 보여 다른 질환으로 오인되기 쉽다는 점이다. 그 결과, 상당수 환자가 이미 혈관이 심하게 좁아진 상태에서야 진단을 받게 된다.
원인과 발병 메커니즘
섬유근이형성증의 정확한 원인은 아직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전적 소인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이며, 가족력 있는 경우 발병 위험이 높아진다. 일부 연구에서는 특정 유전자 변이가 혈관 평활근 세포와 결합조직의 비정상 성장을 유도할 가능성을 제시했다. 호르몬 요인도 중요한 단서다. 여성 발병률이 높은 점과 임신 시 증상 악화 사례가 보고되는 점은 에스트로겐 같은 성호르몬이 혈관벽 성장에 영향을 줄 수 있음을 시사한다.
외부 요인으로는 혈관 외상, 장기간 고혈압, 흡연이 위험 인자로 지목된다. 혈관 벽이 손상되면 치유 과정에서 섬유화가 과도하게 일어나 혈관이 좁아지거나 비정상적으로 비틀릴 수 있다. 병리학적으로 FMD는 혈관 벽의 중간층(media) 또는 내막(intima)에 섬유성 조직이 과도하게 축적되며, 이로 인해 혈관의 탄성 구조가 변형된다. 혈관이 균일하게 좁아지는 경우도 있지만, ‘좁아짐-확장’이 반복되는 비드 모양이 가장 흔하다. 이는 혈관 촬영(angiography)에서 진단의 중요한 단서가 된다. 일부 환자에서는 협착 부위의 혈관이 약해져 동맥류가 동반되기도 하며, 이 동맥류가 파열되면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
증상과 진단 과정
섬유근이형성증의 증상은 혈관이 어느 부위에 생겼는지에 따라 다르다. 신장동맥이 좁아지면 고혈압이 가장 흔한 증상이며, 기존 약물치료에도 혈압이 잘 조절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경동맥이나 척추동맥이 침범되면 두통, 어지럼증, 시야 흐림, 귀울림, 일시적 언어 장애, 팔다리 힘 빠짐 같은 신경학적 증상이 나타난다. 복부 장기의 혈관이 영향을 받으면 복통이나 소화불량이 발생하고, 말초동맥이 좁아지면 손발이 차고 절뚝거림이 나타날 수 있다.
진단은 먼저 환자의 병력과 증상 분석으로 시작된다. 이후 도플러 초음파, CT 혈관조영술(CTA), MR 혈관조영술(MRA)이 주로 사용된다. 도플러 초음파는 비침습적으로 혈류 속도와 패턴을 확인할 수 있고, CTA나 MRA는 혈관의 형태 변화를 3D로 재구성해 ‘비드 모양’ 협착을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확진을 위해 전통적 혈관조영술이 사용되며, 이는 미세한 협착이나 동맥류까지 정밀하게 평가할 수 있는 표준 검사다. 진단 시에는 반드시 다른 원인, 예를 들어 죽상동맥경화증과 감별이 필요하다. 죽상동맥경화증은 주로 노년층에서 나타나며, 혈관 내 플라크가 원인이지만, FMD는 비교적 젊은 층에서 발생하며 플라크가 없는 것이 차이다.
치료와 장기 관리
섬유근이형성증의 치료 목표는 혈류 회복과 합병증 예방이다. 증상이 경미하고 혈류 장애가 심하지 않은 경우, 약물치료와 정기 추적 관찰만으로 관리할 수 있다. 고혈압이 있는 경우에는 ACE 억제제나 안지오텐신 수용체 차단제(ARB)가 선호된다. 그러나 혈류 장애가 심하거나 뇌졸중·장기 손상 위험이 높으면 경피적 풍선 혈관성형술(PTA)이 1차적 치료법으로 사용된다. PTA는 금속 스텐트를 사용하지 않고, 풍선을 부풀려 혈관을 넓히는 방법이며, FMD 환자에서 성공률이 높다.
동맥류가 동반된 경우에는 크기와 위치에 따라 수술적 절제나 코일 색전술이 시행된다. 치료 후에도 재발 가능성이 있으므로 정기적인 영상 검사가 필수다. 환자는 흡연을 반드시 중단해야 하며, 과도한 체력 소모나 혈압 급상승을 유발하는 활동은 피하는 것이 좋다. 특히 여성 환자의 경우 임신 전 FMD 상태를 반드시 평가해야 하며, 임신 중에는 혈압과 혈류를 면밀히 모니터링해야 한다. 최근에는 유전자 분석 기반 맞춤형 치료 연구가 진행 중이며, 특정 유전자 변이가 있는 환자에게는 표적 약물을 투여해 병 진행을 늦추는 임상시험도 시도되고 있다. 이러한 발전이 상용화된다면, FMD 관리의 새로운 시대가 열릴 수 있다.
또한 환자 교육도 중요한 관리 요소다. FMD 환자는 혈압을 일정하게 유지하고, 두통·시야 변화·사지 마비 같은 신경학적 증상이 갑자기 나타나면 즉시 병원을 방문해야 한다. 해외에서는 환자 커뮤니티와 지원 단체가 활성화되어, 생활습관 조언과 최신 치료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네트워크는 환자의 자가 관리 능력을 높이고, 장기적인 예후 향상에 기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