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이질병

서울 지하철 근무자에게 나타나는 특이질병, ''미세먼지 유발성 기관지 과민증

sudi-news 2025. 7. 20. 23:59

지하철 공기질의 그림자, 특이질병의 발현

 서울은 하루 약 천만 명이 이용하는 세계 최고 수준의 지하철 시스템을 갖춘 도시입니다. 그러나 이처럼 편리한 교통망 뒤에는 보이지 않는 건강 위험 요소, 특히 지하 공간에서 발생하는 초미세먼지(PM2.5) 문제가 꾸준히 제기되어 왔습니다. 일반 승객들도 출퇴근 시간대의 혼잡한 환경 속에서 숨쉬기 불편함을 느끼는 경우가 있지만, 지하철 운전사, 역무원, 유지보수 인력처럼 하루 8시간 이상 장시간 지하에서 근무하는 이들은 더 심각한 건강 위협에 노출됩니다. 최근 연구에서는 이들에게서 나타나는 ‘미세먼지 유발성 기관지 과민증’이라는 특이질병이 점점 더 많이 보고되고 있습니다.

미세먼지 유발성 기관지 과민증, 지하철 근무자에게 나타나는 특이질병

 

 이 질환은 초미세먼지에 장기적으로 반복 노출되었을 때 기관지 점막이 과도하게 반응하면서 염증과 수축 반응이 자주 발생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일상적인 먼지나 찬 공기, 가벼운 운동에도 기관지가 쉽게 자극되어 기침, 쌕쌕거림, 호흡 곤란 등의 증상이 반복되며, 일종의 만성 기관지염과 유사한 형태로 진행됩니다. 특이한 점은, 일반적인 천식이나 감기와 달리 뚜렷한 알레르기성 원인이나 감염 없이도 ‘지하공간 노출 이력’이라는 환경 요인이 주된 유발 인자라는 점입니다.

 

 서울 지하철 노동조합과 산업안전보건공단이 공동 실시한 조사에서는 지하철 승무원과 유지보수 근로자의 약 17%가 지속적 호흡기 증상을 호소했으며, 그중 6%는 정밀검사에서 기관지 과민반응이 확인되어 산업재해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지하 공간 특유의 폐쇄성과 재순환 공기 시스템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새로운 유형의 특이질병을 유발하고 있음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지하철 내부 미세먼지의 구성과 인체 영향

 지하철 내부에서의 미세먼지는 외부 도로에서 유입되는 단순한 먼지와는 성질이 다릅니다. 가장 큰 차이점은 금속 성분의 비율이 매우 높다는 점입니다. 열차의 제동 시스템, 철로와 바퀴 간 마찰, 팬과 모터의 마모 등에서 발생하는 철분, 망간, 니켈, 크롬 등 중금속 성분을 포함한 금속성 미세 입자들이 다량 존재합니다. 특히 제동 시 발생하는 페로파티클(ferric particle)은 1마이크로미터 이하의 크기로 폐포까지 쉽게 도달하며, 기관지 내벽에 축적되어 염증 반응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이러한 금속성 초미세먼지는 폐 속 깊숙한 곳까지 침투해 기관지 상피세포의 보호 기능을 손상시키고, 점막 면역 반응을 과도하게 유도합니다. 이로 인해 지속적인 노출 시 기관지 수축 반사작용이 과장되며, 원래는 반응하지 않을 수준의 자극에도 ‘과민 반응(hyperresponsiveness)’이 유발되는 것이 미세먼지 유발성 기관지 과민증의 주요 발병 메커니즘입니다. 더욱이 지하철 역사의 공조 시스템은 외부 공기를 일정 비율로 순환시키더라도 실질적으로 미세먼지의 완전한 제거가 어렵고, 청소 및 환기 시간도 제한적이기 때문에 지속적 노출 환경이 상존합니다.

 

,또한, 지하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은 마스크 착용이 어렵거나 불편한 환경에서 장시간 일하게 되며, 심야 근무나 유지보수 작업 중에는 더 높은 농도의 먼지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환경은 단순히 일시적인 불쾌감을 넘어서 장기적으로는 폐 기능 저하, 천식 악화, 만성 기관지염 및 심혈관 질환의 위험을 증가시키며, 노동자의 삶의 질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보건 위기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진단 사각지대에 놓인 현장 근무자들

 이 특이질병이 문제가 되는 또 다른 이유는, 의료 시스템과 산업안전 체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점입니다. 기관지 과민증은 일반적인 건강검진으로는 진단이 어렵고, 흉부 엑스레이나 폐활량 검사만으로는 명확한 이상이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전문적인 기관지 반응검사(methacholine challenge test)나 염증 지표 측정(FENO 등)을 시행하면, 일반인과 비교해 지하철 근무자의 기관지 과민도가 높게 나타나는 경우가 자주 관찰됩니다. 문제는 이러한 검사가 건강보험 범위 밖이거나, 직업병으로 인식되지 않아 적극적으로 시행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더불어, 해당 질환은 현재 국내 산업재해 기준 목록에도 명확히 분류되어 있지 않아, 산재 인정을 받기도 매우 어려운 상황입니다. 이로 인해 환자들은 본인의 질환이 단순한 알레르기나 개인 체질의 문제로 오해받으며, 직업 환경과의 인과관계가 외면되는 현실에 처하게 됩니다. 특히 일부 하청노동자나 계약직 근로자들은 건강 이상 증상을 겪고 있음에도 고용 불안을 우려해 진단이나 치료를 적극적으로 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서울교통공사에서 자체적으로 추진하는 건강 모니터링 프로그램도 주기적인 호흡기 검사가 아닌 일반 건강검진 수준에 그치고 있어 실질적인 조기 발견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질환의 조기 발견이 어렵고, 증상이 악화된 후에야 병원을 찾게 되는 구조가 고착되고 있으며, 이는 장기적으로 의료비 부담, 노동력 손실, 인적 자원의 건강 악화라는 사회적 비용으로 되돌아오고 있습니다.

 

예방과 제도적 대책: 근본적 환경개선이 핵심

 미세먼지 유발성 기관지 과민증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개인보호구 착용이나 청소 강화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지하철 역사 내 환기 시스템의 전면적 개선과 자동 미세먼지 감지-차단 시스템 구축이 핵심입니다. 실제로 일본 도쿄 지하철은 2010년대 이후 철도 마찰 발생 지점에 분진 흡입 필터와 공기 정화 유닛을 설치하고, 차량 내부 청소를 대폭 강화해 실내 공기질을 30% 이상 개선한 바 있습니다. 서울도 유사한 방식의 금속먼지 제거 기술과 실시간 공기질 감시 시스템 도입이 필요합니다.

 

 근무자들을 위한 산업안전 매뉴얼의 재정비도 시급합니다. 지하철 운전사, 역무원, 정비인력 등을 대상으로 정기적인 기관지 반응검사와 호흡기 전문 진료를 지원하고, 고위험군에게는 산소보조기기나 미세먼지 차단 마스크 지원도 고려해야 합니다. 특히 야간 및 심야 근무조에게는 공기청정기 설치된 휴게공간 제공과 실시간 먼지농도에 따른 근무시간 조정 등의 배려가 필요합니다.

 

 제도적으로는 이 질환을 직업성 특이질병으로 정식 분류하고, 근로복지공단을 통한 산재 인정 절차를 간소화함으로써 조기 진단과 치료를 유도해야 합니다. 또한 서울시와 교통공사는 협력하여 ‘지하근무자 건강 보호 조례’ 제정을 통해 법적 보호 장치를 마련하고, 연구기관과 협업하여 지속적인 역학 조사 및 근무환경 개선 연구를 이어가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지하철은 도시의 혈관이고, 그 혈관을 유지하는 이들의 건강이 곧 도시의 건강입니다. 미세먼지 유발성 기관지 과민증은 단순한 직업병이 아니라, 현대 도시 인프라가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의 징후이며, 지금이 바로 그 해답을 마련해야 할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