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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질병 탐구노트: 온 몸이 피멍처럼 물드는 병, '자반병(Henoch-Schönlein Purpura, HSP)' 갑작스레 생겨나는 붉은 반점의 정체 건강하던 아이의 다리와 엉덩이, 팔에 갑자기 붉고 자잘한 반점이 생긴다. 때로는 멍처럼 보이기도 하고, 눌러도 사라지지 않으며 점점 더 번져가는 이 반점은 단순한 피부 트러블이 아니라 혈관에서 피가 새어나오며 생기는 출혈성 병변, 즉 ‘자반’이다. 이와 같은 증상이 전신에 나타나며 복통, 관절통, 신장 이상을 동반할 수 있다면, 자가면역성 혈관염의 일종인 자반병, 정확히는 헨노흐-쇤라인 자반병(Henoch-Schönlein Purpura, HSP)을 의심할 수 있다. 이 질환은 주로 3~10세 사이의 소아에서 흔히 발생하지만 성인에서도 나타날 수 있으며, 전신의 작은 혈관이 염증으로 손상돼 피가 새어나오는 것이 주된 병리기전이다. 초기 증상은 대부분 하지에 대칭적으로..
특이질병 케이스파일: 몸이 녹아내리는 병, '피부괴사성 근막염(Necrotizing Fasciitis)' 갑작스러운 통증, 일상 속의 치명적 감염피부에 가벼운 상처가 난 것을 대수롭지 않게 넘긴 사람이 다음 날, 극심한 통증과 함께 고열, 부기, 멍 자국 같은 변색이 퍼지는 것을 경험한다. 의료진이 확인했을 때는 이미 피부 안쪽 근막이 괴사되기 시작했고, 단 몇 시간 사이에 생명을 위협하는 감염으로 번져버렸다. 이처럼 일상적인 찰과상이나 벌레 물림, 주사 자국조차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극단적인 감염질환, 그것이 바로 '피부괴사성 근막염(Necrotizing Fasciitis)'이다. 이 병은 매우 빠른 속도로 퍼지며 근막(fascia)을 중심으로 주변 근육, 지방, 피부 조직까지 괴사시킨다. 피부괴사성 근막염은 흔히 “살을 먹는 박테리아(flesh-eating bacteria)”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실제..
특이질병 리포트: 눈꺼풀이 멋대로 닫히는 병, '안검경련(Blepharospasm)' 자꾸 감기는 눈, 단순 피로가 아닐 수 있다 오랜 시간 모니터를 보거나 집중한 뒤 눈꺼풀이 무거워지는 느낌은 누구에게나 익숙하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눈꺼풀이 자의와 관계없이 지속적으로 경련하거나 강하게 닫혀버리는 증상을 반복해서 겪는다. 이는 단순한 피로나 안구건조증이 아니라, 희귀한 신경근육 질환인 ‘안검경련(Blepharospasm)’일 수 있다. 안검경련은 양쪽 눈꺼풀 주변 근육이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수축하는 질환으로, 눈이 자꾸 깜빡이거나, 심한 경우 아예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경련이 이어지는 것이 특징이다. 초기에는 가벼운 깜빡임이나 눈의 피로감 정도로 시작되기 때문에 흔히 스트레스나 수면 부족, 스마트폰 과사용 등 일시적 요인으로 오해되기 쉽다. 그러나 점점 증상이 심해지면 하루에도..
특이질병 케이스파일: 얼굴이 마비되는 순간, '람세이헌트 증후군'(Ramsay Hunt Syndrome) 갑작스러운 얼굴 마비의 공포 어느 날 아침, 거울을 보던 한 사람이 자신의 얼굴 한쪽이 전혀 움직이지 않는 것을 발견한다. 눈이 감기지 않고, 입꼬리는 축 처졌으며, 물을 마시면 입 한쪽으로 줄줄 흘러내린다. 흔히 이런 증상을 보고 사람들은 ‘벨마비(Bell’s palsy)’를 떠올리지만, 유사한 안면신경마비 증상을 보이는 또 다른 질환이 있다. 바로 람세이헌트 증후군(Ramsay Hunt Syndrome)이다. 이는 수두-대상포진 바이러스(Varicella-Zoster Virus, VZV)가 얼굴신경을 침범해 발생하는 신경계 감염 질환이다. 전형적인 증상은 안면 마비와 함께 귀 안팎의 물집, 통증, 청력 저하, 이명, 균형감각 장애 등이 동반되는 것이 특징이다. 람세이헌트 증후군은 1907년 신경학자..
특이질병 리포트: 땀이 멈추지 않는 병, '국소 다한증' (Focal Hyperhidrosis) 일상은 “미끄러운 손바닥”에서 시작된다 국소 다한증은 체온 조절에 필요한 범위를 훨씬 넘어선 땀 분비가 손바닥·발바닥·겨드랑이·얼굴 등 특정 부위에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희귀성 자율신경 질환이다. 전 세계 유병률은 1 ~ 3 %로 추정되지만, 경미한 경우에는 병으로 인식하지 못해 보고율이 낮다. 환자 대부분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볼펜이 미끄러져 글씨가 번지는 경험”이나 “게임기를 잡자마자 버튼이 젖는 당혹감”을 겪으면서 자신의 몸이 남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자각한다. 땀샘 자체에 구조적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뇌-척수에서 땀샘으로 향하는 교감신경이 외부 자극에 과도하게 흥분한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긴장이 조금만 높아져도 분비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밤에는 멀쩡하지만 낮에는 홍수가 터지는 듯한 ..
특이질병 탐구노트: 혈관이 무너지는 병, '유전성 출혈성 모세혈관확장증'(HHT) 피가 멈추지 않는 사람들 하루에 수차례 코피가 터지고, 아무런 외상 없이 혀와 잇몸에서 출혈이 일어나며, 피가 소화관으로 스며들어 만성 빈혈을 유발한다면 어떤 병을 의심해야 할까. 단순한 지혈장애나 혈소판 문제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는 흔히 간과되는 희귀 유전질환인 '유전성 출혈성 모세혈관확장증(Hereditary Hemorrhagic Telangiectasia, 이하 HHT)'일 가능성이 있다. HHT는 전 세계적으로 약 5,000~8,000명 중 1명꼴로 발생하는 상염색체 우성 유전질환으로, 출생 직후나 청소년기 이후부터 서서히 증상이 나타난다. 가장 흔한 초기 증상은 반복적인 코피이며, 심할 경우 하루 수십 차례 이상 출혈이 발생해 일상생활이 어렵게 된다. 이 질환은 혈관 벽을 구성하는 조직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