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이질병

특이질병 인터뷰: 거울 속 내가 낯선가요? '카프그라스 증후군'

sudi-news 2025. 7. 29. 22:19

익숙한 얼굴을 믿을 수 없다는 공포

 사람은 본능적으로 가족과 친지의 얼굴을 알아보고, 그에 맞는 감정을 느낀다. 그러나 만약 어느 날 갑자기, 평소처럼 아침 인사를 나누던 어머니가 더 이상 어머니처럼 느껴지지 않는다면 어떨까. 얼굴은 분명 동일한데, 정서적으로 완전히 낯설고, 심지어 다른 사람으로 느껴진다면? 이처럼 가장 가까운 사람을 ‘가짜’라고 확신하게 되는 병이 바로 '카프그라스 증후군(Capgras Delusion)'이다.

카프그라스 증후군, 익숙한 얼굴도 낯설어지는 특이질병

 

 이 질환은 현실 검증력에 문제가 생기는 ‘망상성 증후군’의 일종으로, 특정 인물, 주로 배우자, 부모, 형제 등,이 외형은 같지만 내면적으로는 완전히 다른 존재로 대체되었다고 믿는 증상이 나타난다. 일부 환자는 자신을 감시하거나 해치기 위해 위장한 사람이라고 확신하기도 하며, 이로 인해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가 극단적으로 파괴된다. 이름은 1923년 프랑스 정신과 의사 장 마리 조셉 카프그라스(Jean Marie Joseph Capgras)가 처음 발표한 사례에서 유래하였다.

 

시각 인지와 감정 반응의 단절

 카프그라스 증후군은 단순한 시각 장애가 아니라, 시각 정보와 감정 반응 간의 연결이 끊어진 뇌기능 이상으로 설명된다. 즉, 얼굴을 보고 그것이 ‘누구인지’는 인지할 수 있지만, 해당 인물에게서 느껴져야 할 감정이 동반되지 않아 낯섦과 불일치를 강하게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이를테면 어머니 얼굴을 보고도, 뇌에서는 “이 사람에게 따뜻함을 느껴야 한다”는 정서적 피드백이 전달되지 않기 때문에, 환자는 오히려 ‘이건 가짜다’라고 결론짓는다.

 

 이와 관련된 연구에서는 측두엽, 편도체, 전두엽 간의 정보 전달 장애가 주요 원인일 수 있다고 보았다. 특히 얼굴 인식은 정상이지만, 감정적 연관이 불가능해지면 현실왜곡이 발생한다는 점에서, 카프그라스 증후군은 심리 문제라기보다 뇌의 회로 이상으로 이해하는 것이 정확하다. 이 증후군은 뇌손상, 치매, 파킨슨병, 외상성 뇌손상 후에도 발생하며, 드물게는 정신분열증(조현병)의 초기 증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가족과 환자 모두에게 남는 깊은 상처

 카프그라스 증후군은 진단 자체도 어렵지만, 그보다 더 힘든 것은 가족들이 겪는 정서적 충격이다. 대부분의 경우 환자는 ‘가짜 가족’이 자신을 해칠 거라고 믿고 두려워하며, 이를 막기 위해 공격적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간혹 식사 거부, 감금 시도, 폭언, 폭행까지 이어지는 사례도 있으며, 이는 간병 가족에게 극심한 스트레스를 안겨준다. 어떤 가족은 “하루아침에 내가 낯선 사람 취급을 받았다”며, 마치 자신이 지워지는 느낌이었다고 표현했다.

 

 특히 치매와 동반된 경우에는 진단명이 겹쳐 대응이 늦어지는 경우가 많다. 간병인이 아닌 보호자를 ‘위협’으로 인식하게 되면, 돌봄 환경 전체가 무너질 수 있다. 가족 간 신뢰가 깨어지며, 환자와 분리된 생활이 불가피해지는 경우도 있다. 이로 인해 환자는 더 빠른 인지기능 저하로 이어지고, 가족은 외로움과 죄책감에 시달리게 된다. 정확한 진단과 초기 대응이 중요한 이유는, 단지 병의 진행을 막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가족 모두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치료는 가능할까? 현실적인 접근법

 카프그라스 증후군은 뇌의 특정 회로에서 발생하는 기능 장애이므로, 이를 완전히 회복시키는 직접적 치료법은 아직 없다. 그러나 주요 증상을 경감시키고, 환자가 현실감을 회복하도록 돕는 약물 및 심리 치료는 일정 부분 효과가 보고되고 있다. 특히 조현병 또는 치매 등 다른 기저 질환이 병존하는 경우에는 해당 질환에 대한 적극적 치료가 우선되어야 한다. 항정신병약(예: 리스페리돈, 할로페리돌 등)과 항불안제 투여가 망상을 완화시키는 데 효과를 보이기도 한다.

 

 비약물적 치료도 병행되어야 한다. 환자가 신뢰하는 제3자를 통해 상황을 중재하거나, 사진, 영상, 익숙한 소리 등 감각 자극을 활용한 회상 치료도 일부 효과가 입증되었다. 간병자는 환자의 망상에 정면으로 반박하기보다, 안전감을 주는 방식으로 감정을 안정시키는 대응법을 익혀야 한다. 예를 들어 “그 사람이 당신을 해칠 이유는 없어”라는 설명보다는, “당신이 불안한 마음이 든 것 같아. 내가 여기 있어”라는 식의 감정 동조가 더 효과적일 수 있다.

 

뇌가 만든 오해, 마음이 감당해야 할 고통

 카프그라스 증후군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망상장애와는 다르다. 이것은 눈앞의 현실과 정서적 반응이 어긋나는 뇌 신호의 비극이다. 한 사람의 존재를 의심하게 되는 경험은, 환자에게도 낯설고 고통스럽다. 누군가를 ‘가짜’라고 믿는 것이 병의 증상이라는 것을 환자 스스로도 받아들이기 어렵기 때문에, 이는 오히려 정체성의 붕괴에 가까운 혼란을 야기한다.

 

 이 질환은 뇌 인식의 한계이자, 인간 관계의 본질을 건드리는 사례이기도 하다. 얼굴은 익숙하지만 감정이 통하지 않을 때, 우리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조차 의심하게 된다. 그래서 카프그라스 증후군은 단지 희귀한 질환이 아니라, 감정, 신뢰, 기억, 뇌 기능이 어떻게 얽혀 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이 질환을 앓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정답을 요구하는 설명보다 지속적인 관계 속에서 경험되는 안정감이다. 그 연결이 회복될 때, 뇌가 아닌 마음이 진짜를 알아볼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