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 아래에 뭔가 꿈틀거리는 느낌
누군가 자신의 피부 아래에서 실처럼 가느다란 섬유질이 꿈틀거리고, 그걸 손으로 뽑아냈다고 주장한다면 사람들은 쉽게 믿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세계 곳곳에는 “피부 속에서 섬유질이 자란다”거나 “살갗 아래에서 기생충 같은 게 움직인다”고 호소하는 환자들이 존재한다. 그들이 말하는 이 괴상하고 불쾌한 질환은 바로 모르겔론스 병(Morgellons Disease)이다.
이 병은 일반적인 피부 질환과 달리, 강한 가려움증, 따끔거림, 무언가가 피부를 기어다니는 감각, 그리고 피부에서 섬유질이나 결정체가 나온다는 증상이 특징이다. 대부분의 환자들은 이 섬유질을 휴지나 핀셋 등으로 뽑아내어 병원에 가져가며, 그것이 자신을 오랜 시간 괴롭힌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많은 경우, 조직검사나 피부 생검, 현미경 검사에서는 명확한 병리적 이상이 발견되지 않으며, 이로 인해 이 질환은 ‘피부형 망상장애’ 또는 ‘정신피부증’으로 간주되는 경우가 많다.
정신질환인가, 감염질환인가: 정체를 둘러싼 논쟁
모르겔론스 병은 2000년대 초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특히 수많은 환자들이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자신의 증상을 공유하며, “의료진이 병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주장이 확산되었다. 일부 환자들은 섬유질의 정체가 외부 환경에서 유입된 미세 플라스틱, 혹은 진균 감염체나 세균 필라멘트라고 주장하였다. 심지어 특정 살충제나 항생제 내성균에 의해 유발된 신종 감염병이라는 설도 제기되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피부과 및 감염내과 전문가는 모르겔론스 병이 기저 정신질환(우울증, 조현병, 망상장애 등)과 관련된 피부감각 장애일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하고 있다. 대표적인 연구로는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2012년 발표한 다년간의 역학조사 결과가 있다. 연구팀은 약 100여 명의 환자에게서 채취한 섬유질 샘플을 분석한 결과, 모두 면, 나일론, 셀룰로오스 등 외부 섬유 물질로 밝혀졌고, 감염성 병원체나 기생충은 전혀 검출되지 않았다고 보고하였다.
환자들이 겪는 고통은 실재한다
모르겔론스 병을 둘러싼 논란은 여전히 진행 중이지만, 분명한 사실은 환자들이 겪는 가려움과 불쾌감, 정신적 고통은 실제라는 점이다. 이 병의 핵심적인 병태는 ‘피부에 무언가가 기어다니는 듯한 감각’, 즉 감각 이상증(parasthesia)인데, 이는 말초신경계 이상이나 뇌 감각 해석 과정의 오류로 인해 발생할 수 있다. 즉, 물리적으로 섬유질이 존재하지 않더라도 환자는 그것이 있다는 확신을 강하게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많은 환자들이 병원에서 “당신은 정신과에 가야 한다”는 말을 듣고 큰 수치심과 분노를 느끼며 의료 체계를 외면하게 된다. 이에 따라 자가 치료를 시도하거나,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비공식 약물이나 피부 시술에 의존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결과적으로 피부를 스스로 파내거나, 반복적으로 긁고 찢는 등의 자해적 상처가 생기고, 이것이 실제로 2차 감염과 흉터로 이어지며 질병을 더욱 악화시키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특이질병
모르겔론스 병은 여전히 의학적으로 명확한 병명으로 분류되진 않았지만, ‘없다’고 단정짓기에는 환자 수와 경험의 일관성이 너무 많다. 전 세계 수천 명이 유사한 증상을 호소하고 있으며, 일부 연구자들은 특정 박테리아, 예를 들어 보렐리아(Borrelia), 와의 연관성을 탐구 중이기도 하다. 이처럼 질병인지 여부를 판단하는 과정 자체가 사회적, 과학적 논쟁의 대상이 되는 드문 사례다.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병의 실체 여부보다도, 그 병을 앓는 사람들이 받는 고통에 대해 어떻게 접근하고 대응할 것인가이다. 환자의 말이 과장되거나 잘못되었다고 해서, 그 고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모르겔론스 병은 과학과 정신의학, 피부과학이 교차하는 지점에 위치한 특이질병이며, 진단과 치료보다 먼저 신뢰와 공감 기반의 상담적 접근이 필요하다. 의료가 이해하지 못하는 질환을 마주할 때, 우리는 더 겸손하고 열린 태도로 환자의 언어를 경청해야 한다.
환자를 존중하는 접근이 과학보다 앞서야 한다
의료현장에서 모르겔론스 병을 대하는 태도는 그 자체로 현대 의학의 한계와 윤리의식을 시험하는 기준선이 되고 있다. 병의 실체를 증명하는 것보다, 그것을 경험하는 당사자의 감정과 행동을 어떻게 존중할 것인지가 더 절실한 과제로 떠오른 것이다. 모르겔론스 병을 ‘없는 병’이라거나 ‘자기암시에 불과한 증상’으로 단정지을 경우, 환자는 다시는 의료기관을 찾지 않게 되며, 이는 결국 더 심각한 자해, 고립, 사회적 단절로 이어질 수 있다.
최근 일부 의사는 모르겔론스 병을 '의심되는 질병'으로만 규정하되, 치료는 실질적으로 진행하는 이중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피부염 완화를 위한 국소 항생제, 피부 재생 보조제, 가려움 억제제 등을 투여하면서, 동시에 정신건강의학과와의 협진을 통해 인지 행동치료(CBT)나 항불안 치료를 병행하는 방식이다. 이는 병의 존재 유무를 판단하기보다, 환자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에 우선순위를 둔 치료 방식이다.
또한 의료계 일각에서는 이 질병을 ‘진화 중인 병리 현상’으로 정의하고 장기적 관찰과 다학제 연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환자의 주관적 체험을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과학적 데이터 축적과 분석을 통해 미래의 새로운 질병 분류 체계에 편입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자는 것이다. 모르겔론스 병은 아직까지는 수수께끼 같고 논쟁적인 질병이지만, 이 병을 통해 의료가 과학일 뿐 아니라 ‘관계의 기술’이어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