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업의 숨은 그림자, 호흡기로 침투하는 보이지 않는 위험
경남 창원은 대한민국 조선업의 심장부로, 대형 조선소와 관련 기계 제조업체가 밀집한 산업도시다. 이 지역의 수많은 근로자들은 용접, 절단, 연마 등 고온 공정에 매일 노출되며 일한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장기간 용접 작업에 종사한 근로자들 사이에서 만성적인 기침, 호흡곤란, 흉부 압박감 등의 증상을 호소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단순한 직업병으로 치부되기 쉬운 이 증상들은 자세한 조사 결과, '용접흄 폐섬유화증(Welding Fume-Induced Pulmonary Fibrosis)'이라는 특이질병으로 판명되고 있다.
용접흄은 금속이 고온에 노출될 때 발생하는 초미세 입자상 금속 산화물의 집합으로, 크기가 1μm 이하에 불과해 폐포 깊숙이 침투한다. 이 미세 입자들은 크롬, 니켈, 망간, 카드뮴 등 인체에 유독한 중금속을 포함하고 있어, 장기간 흡입 시 폐 조직에 만성 염증을 유발하고 섬유화를 촉진한다. 폐섬유화란 폐 조직이 굳고 두꺼워지는 병리 현상으로, 일단 발생하면 회복이 어렵고, 시간이 지나면서 산소 교환 기능이 점차 저하되며 일상적인 호흡조차 힘들어지는 질환으로 발전할 수 있다.
일반적인 폐 질환과는 다른, 조기 진단의 어려움
용접흄 폐섬유화증은 일반적인 천식이나 만성 폐쇄성 폐질환(COPD)과는 증상이 유사하지만 병리기전이 전혀 다르다. 특히 조기 증상은 경미한 기침이나 숨찬 느낌으로 시작되어 감기나 기관지염으로 오인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방치될 경우 서서히 폐 기능이 저하되고, 운동 시 호흡 곤란이 심화되며 말기에는 산소호흡기 없이는 생활이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기도 한다. 문제는 이 질병이 조선업 종사자들 사이에서 광범위하게 퍼져 있지만, 대부분의 작업자가 이를 질병으로 인식하지 못한 채 참는 데 익숙해 있다는 점이다.
더욱이 산업현장에서는 흄 발생량에 대한 정기적 측정이나 인체노출 평가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정기 건강검진에서도 흉부 X선이나 폐활량 검사 등 기본적인 검사에 그쳐 초기 폐섬유화는 놓치기 쉽다. 폐 기능이 50% 이하로 떨어져야 발견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조기 진단율은 극히 낮다. 그 결과, 근로자들은 자각 증상이 심해진 후에야 병원을 찾고, 이때는 이미 폐섬유화가 진행되어 치료 효과가 미미한 상태에 도달해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현실은 용접 작업자들에게 큰 건강 위험을 초래함과 동시에 가족까지 간접 노출될 가능성을 높인다.
산업안전 규제의 한계와 지역 특화 예방 전략의 필요성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은 용접작업 시 국소배기장치 설치, 보호구 착용, 환기 시스템 유지 등을 의무화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실행력은 제한적이다. 특히 창원과 같은 대규모 공정 중심의 조선기계 산업체에서는 공정의 연속성과 생산성 유지가 우선시되어, 용접흄 제거 시스템이 일시적으로 중단되거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도 빈번히 발생한다. 중소 조선소나 하청업체의 경우, 작업장의 환경관리는 더욱 미비한 수준이다. 이런 조건 속에서 근로자들은 하루 8시간 이상, 주 6일 동안 지속적으로 유해 입자를 흡입하며 일하고 있다.
이러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지역 중심의 특화된 건강관리 시스템이 절실하다. 우선, 창원지역 산업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직업병 등록제도와 지역 의료기관과 연계한 폐질환 전수조사가 필요하다. 또한 용접작업을 수행하는 사업장에는 자동화 용접기 도입을 통한 노출 최소화, 개인 보호장비의 성능 향상 및 착용 교육 강화, 정기적인 용접흄 농도 측정 및 공기질 평가 의무화 등의 제도적 조치가 병행되어야 한다. 창원시는 이미 산업보건 클러스터를 일부 운영하고 있지만, 용접흄 특이질병에 대한 별도 모니터링 체계는 부재한 실정이다.
지속가능한 산업을 위한 건강권 보호, 사회적 논의 시급
용접흄 폐섬유화증은 단지 몇몇 작업자의 개인 건강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중공업 산업 전반에 걸친 구조적 위험성을 반영하는 특이질병이다. 특히 창원처럼 대규모 조선업 종사자가 지역경제를 지탱하는 도시에서는, 산업 성장을 위한 노력만큼이나 근로자의 건강을 보장하는 시스템 역시 필수적이다. 작업자들의 폐 건강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지속가능한 산업 발전은 요원하며, 이로 인한 장기적인 사회적 비용은 국가 차원에서도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정부와 지자체는 조선업 밀집지역을 대상으로 산업안전특별관리구역 지정, 고위험군 건강 모니터링 전담센터 설립, 폐섬유화 조기진단 프로그램 운영 등을 통해 선제적인 예방에 나서야 한다. 아울러, 근로자의 건강 피해에 대해 실질적 보상이 가능한 산업재해보상 제도 정비도 병행되어야 한다. 이제는 산업의 성장 이면에 존재해왔던 보이지 않는 질병, 즉 ‘용접흄 폐섬유화증’이라는 특이질병에 대해 사회 전체가 관심을 갖고, 실효성 있는 대응에 나설 때다. 이 질병을 조기에 인식하고 대처한다면, 수많은 조선업 종사자들의 삶의 질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특이질병'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천 공항 근무자 사이에서 보고된 특이질병, '제트연료 유래 두통 증후군' (0) | 2025.07.22 |
---|---|
울릉도 거주민에게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특이질병, '해풍 알레르기 접촉피부염' (0) | 2025.07.22 |
대전 화학연구단지 인근 주민의 특이질병, '만성 노출성 유기용제 신경병증' (0) | 2025.07.21 |
전북 농촌 지역 어르신들 사이에 유행하는 특이질병, '곰팡이독성 간염' (0) | 2025.07.21 |
서울 지하철 근무자에게 나타나는 특이질병, ''미세먼지 유발성 기관지 과민증 (0) | 2025.07.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