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이질병

특이질병 리포트: 피부가 녹아내리는 병, '스티븐스-존슨 증후군(Stevens-Johnson Syndrome)'

sudi-news 2025. 8. 5. 12:22

갑작스럽게 무너지는 피부 장벽

 건강하던 사람이 감기약을 복용한 지 이틀 만에 입안이 헐고, 눈이 붓고, 피부에 수포와 열감이 생긴다. 며칠 뒤, 그 수포는 점차 전신으로 퍼지며 피부가 벗겨지고, 열이 오르고, 호흡까지 어려워진다. 이처럼 급성 피부·점막 괴사성 병변으로 시작되는 희귀 질환이 바로 '스티븐스-존슨 증후군(Stevens-Johnson Syndrome, 이하 SJS)'이다. SJS는 주로 약물 반응이나 감염에 의해 발생하는 중증의 면역 과민반응으로, 전신 피부의 약 10% 이하가 벗겨지는 형태를 말하며, 그 이상 진행될 경우 독성표피괴사용해(Toxic Epidermal Necrolysis, TEN)로 분류된다.

스티븐스-존슨 증후군, 갑자기 피부가 괴사되는 특이질병

 

 이 질환은 응급질환이며, 전신적 염증 반응과 함께 피부, 점막, 안구, 호흡기, 비뇨생식기까지 넓게 침범한다. 초기에는 감기처럼 시작되어 흔히 진단이 늦어지며, 피부 수포가 형성된 후 2448시간 내에 광범위한 탈피가 나타날 수 있다. 피부는 마치 화상을 입은 것처럼 벗겨지며, 체액 손실과 감염에 극도로 취약해진다. 사망률은 1030%에 달하며, 조기 대응과 전문적인 집중 치료가 생사를 가른다. SJS는 흔치 않지만, 그 발병의 충격성과 예후의 치명성으로 인해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특이질환 중 하나다.

 

약물이 촉발하는 면역의 반란

 SJS는 본질적으로 면역계의 오작동에서 비롯된다. 특히 특정 약물에 노출된 후, 면역계가 자기 신체의 피부세포를 공격하는 세포독성 면역 반응이 주요 발병 기전이다. 원인 약물은 항경련제(카르바마제핀, 페니토인), 항생제(설폰아마이드계, 아목시실린), 해열진통제(NSAIDs), 항바이러스제 등 매우 다양하다. 이 약제들은 간혹 개인의 유전적 특성과 맞물리면서 T세포 활성화와 사이토카인 폭풍을 유발하고, 결과적으로 표피세포의 괴사와 분리를 일으킨다.

 

 최근 유전자 연구에서는 HLA-B1502, HLA-B5801 등의 유전자가 특정 약물 유발 SJS의 고위험군과 관련 있음이 밝혀졌다. 예를 들어, 아시아계 환자에게서 HLA-B*1502 유전자가 있을 경우, 카르바마제핀에 의한 SJS 발생률이 급격히 증가한다는 사실은 약물 유전체학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하지만 모든 환자가 약물로 SJS를 겪는 것은 아니며, 소아의 경우 마이코플라스마 감염 등 감염성 원인도 주요 기전이 될 수 있다. 이처럼 SJS는 외부 자극과 내부 면역 체계, 유전적 민감성이 얽힌 복합질환으로, 사전 예측과 개인 맞춤 예방이 매우 중요하다.

 

생존 이후의 그림자, 후유증과 회복

 스티븐스-존슨 증후군은 단지 급성기만 치명적인 것이 아니다. 생존 이후에도 환자들은 심각한 만성 후유증과 삶의 질 저하를 경험한다. 가장 흔한 후유증은 안구 손상으로, 각막 혼탁, 눈꺼풀 유착, 시력 저하가 나타날 수 있으며 심하면 실명에 이른다. 입과 인후의 점막 괴사로 인해 식사와 언어 기능의 장애, 요도와 생식기의 유착으로 배뇨 및 성기능 장애, 피부 이식 부위의 만성 통증과 감각 이상 등 다양한 장애가 장기간 지속된다. 특히 소아 환자에게는 성장발달에 영향을 주는 경우도 있어, 장기적인 재활과 심리사회적 지원이 필수적이다.

 

 또한 급성기 중중 화상환자와 동일한 수준의 집중 치료가 필요하며, 격리병동에서의 무균 처치, 전해질 관리, 피부 수분 유지, 항생제 감염 통제 등이 중요하다. 그러나 국내외 대부분의 병원은 아직까지 SJS에 특화된 치료 환경이 부족하다. 환자들은 일반 내과 혹은 피부과에 입원하지만, 실제로는 화상 전문 치료 수준의 다학제 대응이 필요하다. 따라서 중증약물반응 전담팀, 희귀질환전문센터의 구축, 환자 진료 가이드라인 마련 등 구조적인 의료 시스템의 정비가 시급하다.

 

약에 대한 감시와 예측, 예방이 핵심이다

 SJS의 예방은 곧 약물 안전성 관리 시스템의 질적 수준을 상징한다. 이는 단순히 의사의 처방 오류를 줄이는 것을 넘어, 환자의 유전적 소인에 따라 약물 사용을 사전에 차단하는 정밀의학적 접근을 의미한다. 실제로 유럽과 아시아 일부 국가는 고위험 유전자를 가진 환자에 대해 특정 약물 사용을 금지하거나 사전 유전자 검사를 의무화하고 있다. 이는 개인 유전자 정보 기반의 약물 감시 체계로, 앞으로 희귀하지만 치명적인 약물반응을 예방하는 표준이 될 가능성이 크다.

 

 더불어 제약회사와 보건당국은 신규 약물의 임상시험 단계에서부터 SJS 발생 가능성에 대한 모니터링과 보고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환자 개개인은 자신의 약물 과민 반응 이력을 철저히 기록하고 의료기관에 공유해야 하며, 의료진 또한 환자의 복용 약력과 가족력, 기저질환을 충분히 반영해 처방 결정을 내려야 한다. 스티븐스-존슨 증후군은 단순한 ‘부작용’이 아닌, 약물과 인체 사이의 비극적인 충돌이다. 그러나 그만큼, 사전에 준비한다면 막을 수 있는 충돌이기도 하다. 이 병은 결국, 의료의 정밀함과 사회의 책임감이 만나는 지점에서 예방 가능한 위기다.

 

‘희귀’라는 말 뒤에 숨겨진 사각지대

 스티븐스-존슨 증후군은 발생률이 낮다는 이유로 의료 체계 내에서 종종 뒷전으로 밀린다. 환자 수가 적다는 것은 곧 투자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뜻이며, 결과적으로 정보 부족, 진단 지연, 치료 접근성의 편차로 이어진다. 특히 중소병원이나 지역 의료기관에서는 이 질환에 대한 경험 자체가 부족해 초기 대응이 늦어지고, 생존율과 후유증 수준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또한 많은 환자들은 급성기 이후에 받을 수 있는 국가 차원의 재활 지원, 심리치료, 사회복귀 프로그램의 부재로 인해 장기간 고립 상태에 놓이게 된다. SJS는 단순히 약물 과민반응이 아니라, 희귀성으로 인해 구조적 소외까지 함께 겪는 복합적 질환이다.

 

 이러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선, 단순한 보건의료 인프라 확충을 넘어 희귀질환 관리체계의 질적 전환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중증약물반응 전담 센터 설립, 전자의무기록 기반 부작용 알림 시스템 구축, 국민 대상 교육 캠페인 강화 등이 실질적인 예방 및 조기대응 효과를 낼 수 있다. 환자 단체와 학회도 제약사, 정부와 협력해 SJS 및 TEN에 대한 임상데이터를 축적하고, 환자들의 치료 여정이 단절되지 않도록 돕는 중간지대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우리가 ‘희귀하다’는 이유로 이 병을 외면한다면, 그 희귀성은 언젠가 나 자신 혹은 가족의 이야기로 돌아올 수 있다. 그 가능성을 차단하는 것이 바로 오늘의 인식이고, 내일의 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