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레 생겨나는 붉은 반점의 정체
건강하던 아이의 다리와 엉덩이, 팔에 갑자기 붉고 자잘한 반점이 생긴다. 때로는 멍처럼 보이기도 하고, 눌러도 사라지지 않으며 점점 더 번져가는 이 반점은 단순한 피부 트러블이 아니라 혈관에서 피가 새어나오며 생기는 출혈성 병변, 즉 ‘자반’이다. 이와 같은 증상이 전신에 나타나며 복통, 관절통, 신장 이상을 동반할 수 있다면, 자가면역성 혈관염의 일종인 자반병, 정확히는 헨노흐-쇤라인 자반병(Henoch-Schönlein Purpura, HSP)을 의심할 수 있다. 이 질환은 주로 3~10세 사이의 소아에서 흔히 발생하지만 성인에서도 나타날 수 있으며, 전신의 작은 혈관이 염증으로 손상돼 피가 새어나오는 것이 주된 병리기전이다.
초기 증상은 대부분 하지에 대칭적으로 나타나는 자반성 반점으로 시작된다. 피부 아래에서 실핏줄이 터지는 것과 비슷하지만, 외상 없이 자연스럽게 발생하며 색이 점차 진해진다. 동시에 환자는 복통, 관절통, 혈뇨 또는 단백뇨와 같은 증상을 경험할 수 있으며, 일부는 발열이나 식욕 저하, 구토도 동반한다. 겉으로 보기엔 단순한 피부병처럼 보이지만, 내부에서는 혈관과 면역계가 충돌하며 전신 염증 반응이 일어나고 있는 상태다. 이 질환은 자가면역 질환의 일종으로, 우리 몸이 외부 침입자로 착각한 항원을 제거하기 위해 만들어낸 항체가 정상 혈관에까지 공격을 가하는 현상으로 인해 발생한다.
면역계의 오작동이 만들어낸 전신 질환
헨노흐-쇤라인 자반병은 면역글로불린 A(IgA)라는 항체가 비정상적으로 혈관 벽에 침착되어 생기는 염증성 혈관염이다. 주로 피부, 소화관, 관절, 신장 등의 소혈관(small vessels)에 영향을 미치며, 이로 인해 해당 장기에서 다양한 증상이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IgA 침착은 감염, 음식, 약물, 백신 등에 의해 유발되는 경우가 많으며, 특히 상기도 감염(감기나 인후염 등) 후 1~3주 내에 자반병이 발생하는 경우가 흔하다. 즉, 감기에 걸린 후 회복되던 아이가 갑자기 붉은 반점과 함께 복통을 호소한다면, 단순한 후유증이 아니라 자반병의 초기 증상일 수 있다.
이 질환은 소아에서 자주 발생하지만, 성인에게 나타날 경우 더 심각한 경과를 보일 수 있다. 특히 신장 침범이 있을 경우 만성 신부전으로 이어질 위험이 커지며, 이 때문에 혈뇨, 단백뇨 여부를 조기에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관절통은 대부분 일시적이며 비파괴적인 경우가 많지만, 관절을 움직이기 어려울 정도로 붓고 아플 수 있다. 소화기계 침범의 경우 장의 혈관에 염증이 생기면서 복통, 장출혈, 장중첩증 등의 합병증이 생길 수 있으며, 드물게는 장 천공까지도 발생한다. 이처럼 HSP는 단순한 피부 증상에 머무르지 않고, 면역계 전반의 이상 반응이 다장기 손상으로 이어지는 복합 질환이다.
진단은 임상 중심, 신장은 반드시 확인해야
자반병은 혈액검사나 영상 검사 하나로 단정할 수 있는 병이 아니며, 임상 증상의 조합을 통해 진단된다. 주요 진단 기준은 다음과 같다: (1) 비혈소판감소성 자반(palpable purpura), (2) 16세 미만, (3) 복통, (4) 관절통 또는 관절염, (5) 신장 침범(혈뇨, 단백뇨) 중 2개 이상을 만족할 경우 진단 가능성이 높다. 실제 진단에서는 피부 조직검사에서 IgA 침착이 확인될 수 있으며, 혈액검사에서는 일반적인 염증 수치(CRP, ESR) 상승 외에 뚜렷한 특이 소견이 없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신장 기능의 모니터링이다. 소아 환자의 약 40%, 성인 환자의 약 50~70%에서 신장 침범이 동반되며, 일부는 몇 년이 지나서야 만성 신질환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따라서 진단 시점뿐 아니라 수개월에서 수년간 요단백 검사, 소변검사, 신장 기능 검사를 주기적으로 시행해야 한다. 복통이 심할 경우 복부 초음파를 통해 장 중첩이나 장출혈 여부를 확인하며, 관절 부종이 있을 때는 류마티스 관절염 등 다른 질환과의 감별이 필요하다. 이처럼 자반병은 진단 후에도 꾸준한 추적 관찰이 필요한 만성 염증성 질환으로 분류된다.
대부분 자연회복되지만, 방심은 금물
헨노흐-쇤라인 자반병은 다행히도 대부분의 경우 자연적으로 호전되는 자가면역 질환에 속한다. 소아 환자의 90% 이상은 몇 주 내로 특별한 치료 없이도 증상이 완전히 사라지며, 예후도 좋은 편이다. 하지만 증상이 심하거나 내장 침범이 있는 경우에는 스테로이드(프레드니솔론 등)를 투여해 염증 반응을 조절해야 하며, 드물게 면역억제제나 고용량 면역글로불린(IVIG)이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 특히 신장 침범이 있는 경우에는 신장 전문의의 협진이 필수적이며, 단백뇨가 지속되면 ACE 억제제, ARB 계열 약물 등으로 단백뇨를 조절한다.
증상이 가라앉았다가 수주 내 다시 나타나는 재발 사례도 많으며, 일부 환자는 수개월 간 여러 차례 재발을 반복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증상 소실 후에도 정기적인 소변검사와 진료가 중요하다. 한편, 성인 환자에서는 신장 기능 손상이나 복합 장기 침범의 빈도가 더 높고, 자연 회복률이 낮은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이 때문에 성인의 자반병은 보다 적극적인 치료와 장기적인 추적관찰이 요구되는 질환이다. 단순히 피부에 멍이 든 것처럼 보이는 초기 증상이, 몸 깊숙한 장기 문제의 신호일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아이를 위한 병인가, 성인을 경고하는 병인가
자반병은 오랫동안 ‘소아에게 흔한 질환’으로 여겨졌지만, 최근 들어 성인에서의 발병률과 중증도 역시 주목받고 있다. 성인의 경우 자반병이 단순 자가면역 질환이 아닌 기저 질환의 경고 신호일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일부 연구에서는 성인 자반병 환자 중 일부가 혈액암(림프종, 백혈병)이나 기타 전신질환과 연관돼 있다는 보고도 있다. 또한 노년층에서는 증상 자체가 애매하게 나타나 진단이 지연되는 사례가 많고, 신장 기능 저하가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이와 동시에 자반병은 학교, 학부모, 교사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할 소아 질환이기도 하다. 겉으로 보기에 멍처럼 보여 아이가 학대받았다고 오해받는 일이 발생할 수 있으며, 반복적인 통증과 불편함은 학교생활에 큰 지장을 준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학교 보건교사와 보호자가 자반병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증상이 있을 때 즉시 병원 진료를 받도록 안내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결국 자반병은 아이들에게는 조기 치료와 보호 체계가, 성인에게는 기저 질환과 장기 침범에 대한 정밀한 관리가 필요한 연령과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특이질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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