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경계선에서 일어나는 신체의 이상 반응
충남 서산은 대규모 석유화학단지와 정유시설이 밀집한 산업지역으로, LG화학, 한화토탈, 현대오일뱅크 등의 기업체들이 입주해 있다. 이러한 고위험 산업단지는 24시간 경계가 필요하기 때문에, 방호·경비 인력들이 교대로 상주하며 출입 통제와 화재 감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특히 경비원들은 정유공장 외곽 또는 배관 인접 구역에서 장시간 대기하거나 순찰하는 업무를 맡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공기 중에 미세하게 유출되는 유해가스에 지속적으로 노출될 수 있다. 최근 이 지역에서 근무하는 일부 경비원들이 호흡곤란, 흉통, 두근거림, 불안 발작, 잦은 기침, 만성 피로 등 유사한 증상을 호소하고 있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이러한 증상은 기존의 천식이나 단순 호흡기 질환과는 달리, 심장과 폐 기능이 동시에 과각성 상태로 진입하는 양상을 보인다. 전문가들은 이를 ‘장시간 유해가스 노출성 심폐 과흥분 증후군’이라는 새로운 특이질병 범주로 명명하고 있으며, 이는 일반적인 산업안전 체계에서는 간과되기 쉬운, 저강도 유해물질 누출 환경과 인체의 신경생리 반응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해석된다. 특히 서산이라는 지역 기반성과 직무 특수성이 맞물리면서, 지역기반 특이질병으로 분류할 수 있는 타당성이 커지고 있다.
유해가스 미량 노출의 교묘한 침투와 교감신경의 반응
석유화학단지에서는 휘발성 유기화합물(VOCs), 황화수소(H₂S), 벤젠, 톨루엔, 자일렌, 질소산화물 등 다양한 유해가스가 정제·이송·연소 과정에서 배출될 수 있다. 대부분의 경우 이들 가스는 허용 기준 이하로 관리되지만, 경계 구역에 위치한 경비원들은 소음과 매연, 미세한 가스의 혼합 환경에서 장시간 노출되며, 그 노출은 주기적이 아니라 지속적이고 누적적인 양상을 보인다. 이러한 저농도 지속 노출은 초기에는 특별한 증상이 없으나, 자율신경계를 통해 심폐기능의 과항진을 유도하게 된다. 즉, 뇌는 지속적인 ‘위협 신호’를 받아들이게 되며, 이에 따라 심박수 상승, 호흡 속도 증가, 폐포 과확장 같은 반응이 만성화된다.
2023년 충남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진행한 현장 역학조사에 따르면, 서산 석유화학단지 주변 경비 인력 42명 중 61.9%가 최근 1년 내 원인 모를 호흡 이상 또는 심장 두근거림을 경험했으며, 이들 중 절반 이상은 병원 진료에서 ‘스트레스성’ 혹은 ‘기능적 이상’으로 분류되어 치료받지 못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의 심박수 변화율(HRV) 지표와 호흡 반응계 검사에서 자율신경계 과흥분 소견이 다수 확인되었고, 가스 누출과는 직접 연관이 없는 것으로 보이던 시점에도 생리학적 반응이 유지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단기 노출이 아닌, 장기 누적과 뇌-심폐 연결 메커니즘의 이상 활성화로 인한 증후군일 가능성을 시사한다.
“냄새도 없는데 숨이 가빠요”라는 반복되는 외침
서산 A화학단지에서 6년째 야간 순찰 근무 중인 B씨는 “일교차가 큰 밤이면 숨이 막히는 느낌이 들고, 가끔은 이유 없이 가슴이 벌렁거린다”며 “순찰 후 사무실에 들어와 앉아 있으면 그제야 진정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경비원 C씨는 “정확히 어디서 새는지도 모르지만, 가끔은 마스크를 써도 눈이 따갑거나 숨이 답답해진다”며 “병원에 가봐도 폐나 심장에는 이상이 없다는 소리만 듣는다”고 전했다. 문제는 이러한 증상이 소리 없이 진행되며 일상에 누적된다는 점이다. 누구도 심각한 병으로 여기지 않지만, 해당 경비원들은 점점 더 신경과민, 불면, 과호흡, 가슴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다.
이러한 사례들은 일반적인 직업성 질환으로 분류되기 어려운 특성을 가지고 있다. 기존의 산재 기준은 유해가스 농도가 법적 기준을 초과하거나, 객관적인 손상(폐기능 저하, 천식, 폐암 등)이 입증되어야 인정되는데, ‘심폐 과흥분 증후군’은 자율신경계의 비정상적 각성 상태로 인해 발생하는 증후군이기에 그 병리학적 구조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실제 피해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이처럼 보이지 않는 질환은 진단되지 못하고 방치되기 때문에 더욱 위험할 수 있다. 서산 지역 경비직군의 고유한 작업 특성과 증상 유형은, ‘특이질병’으로서 별도의 인식과 접근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하게 시사한다.
‘보이지 않는 피로’에 대응하는 제도적 변화 필요
‘장시간 유해가스 노출성 심폐 과흥분 증후군’은 단순한 건강 이상이 아닌, 지역 산업 환경과 직무 특수성에서 파생된 복합 신체 반응 질환이다. 이를 예방하고 제도화하기 위해선 첫째, 석유화학단지 내 경비 인력의 건강검진 항목에 심박변이도(HRV), 폐포과호흡 테스트, 자율신경계 균형 평가 등을 포함한 정밀검사가 추가되어야 한다. 둘째, 경비 업무 특성상 노출이 지속된다는 점을 고려해, 순환 근무제도 및 일정 시간 이상 연속 근무 제한 규정이 마련되어야 한다.
셋째, 작업장 외곽에 대한 실시간 공기질 모니터링 시스템 확대와 피폭가스 알림 장치 도입, 고농도 노출 시 신속한 대피 매뉴얼 등이 병행돼야 한다. 또한, 이러한 증상이 반복되는 근로자에 대해선 산재 신청 시 자율신경계 기반 진단서도 공식 인정될 수 있도록 정책적 기준이 재정비되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질환이 특정 지역, 특정 직종에서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산업의 경계에서 ‘숨을 쉬는 일조차 버거운 사람들’이 있다면, 그 고통에 먼저 이름을 붙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공공 보건의 출발이다. ‘특이질병’으로서 이 증후군을 기록하고, 보호체계를 갖춰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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