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이질병

제주 서귀포 연안 해조류 수확자에게 나타나는 특이질병, '해조류 곰팡이 기인 폐 알레르기'

sudi-news 2025. 7. 17. 07:19

제주 해녀문화의 그림자, 보이지 않는 폐질환의 실체

 제주도 서귀포시는 맑은 해양환경과 따뜻한 수온 덕분에 미역, 다시마, 톳, 청각 등 다양한 해조류의 주요 생산지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특히 해녀를 중심으로 한 전통적인 수산물 채취 문화는 지역 경제뿐 아니라 제주 특유의 무형문화재로도 보호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문화와 생업의 이면에는,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은 직업 기반 특이질병이 존재합니다. 바로 해조류에서 발생하는 곰팡이 및 그 대사산물에 의한 폐 알레르기성 염증, 일명 '해조류 곰팡이 기인 폐 알레르기’입니다.

제주 서귀포 연안 해조류 수확자에게 나타나는 특이질병, 해조류 곰팡이 기인 폐 알레르기

 

 이 질환은 주로 해조류를 채취·건조·선별하는 과정에서, 공기 중으로 날리는 곰팡이 포자와 미세 유기물 입자를 반복적으로 흡입함으로써 발생합니다. 특히 제주처럼 바닷바람이 강하고 습한 지역에서는 해조류가 쉽게 부패하거나 곰팡이가 자생하기 쉬운 환경이 조성됩니다. 일부 곰팡이 포자는 강한 면역자극성을 지닌 항원을 포함하고 있어,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폐포에 과민 반응을 일으키고 염증이나 폐 기능 저하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직업성 천식이나 감기와는 다른, 구조적이고 반복적인 환경 노출에 따른 특이질병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2022년 제주대학교 의과대학 연구팀은 서귀포 지역 해조류 수확 작업에 종사하는 여성 100명을 대상으로 건강검진을 실시한 결과, 19%가량이 비감염성 폐포염 의심 소견을 보였고, 그 중 다수가 곰팡이 노출 이력이 있음을 밝혀냈습니다. 특히 해조류 건조장 주변에서 근무하는 고령 해녀나 가족 노동자에게서 유사한 증상들이 집중되면서, 이 질병이 단순한 알레르기 반응이 아닌, 지역 고유 환경에 기반한 특이질병이라는 해석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해조류와 곰팡이의 결합, 눈에 보이지 않는 위험

 해조류는 수확 이후에도 다량의 수분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건조 과정 중 다양한 곰팡이성 미생물이 자생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특히 다시마, 미역, 청각처럼 표면적이 넓고 구불구불한 형태를 가진 해조류는 수분이 잘 마르지 않아 내부에서 곰팡이가 증식하기 좋은 구조입니다. 제주 서귀포 해안가의 많은 건조장은 여전히 자연 바람과 햇빛에 의존한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생기는 곰팡이 포자가 건조장 주변 공기 중에 다량으로 부유하게 됩니다.

 

 문제는 이들 곰팡이 중 일부는 Aspergillus, Cladosporium, Alternaria 등 사람의 폐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기 쉬운 종류들이며, 장기적으로 흡입할 경우 과민성 폐렴(Hypersensitivity Pneumonitis, HP), 만성 폐포염, 또는 기관지천식으로 악화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특히 고령의 해녀나 도민 노동자는 장기간 축적된 노출로 인해 초기 자각 증상이 없더라도 폐 조직에 미세한 염증이 누적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미생물 입자는 해조류 표면에 붙은 상태로 채취되거나 건조 중에 떨어지며, 선별과정에서는 작업자의 얼굴 가까이서 다량 흡입될 수 있습니다. 특히 폐쇄된 건조소나 바람이 강한 날 야외 건조장 근무 시에는 입자 노출량이 급격히 증가하게 되며, 보호장구 미착용 시 감염 또는 과민 반응의 위험성이 더욱 커집니다. 문제는 이와 같은 상황이 제주 서귀포 일대에서 매년 반복되며, 질환이 ‘생활 속 만성적 피해’로 누적되고 있음에도 인식과 대응이 매우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자각 어려운 초기 증상과 진단의 모호함

 해조류 곰팡이 기인 폐 알레르기는 일반적인 호흡기 질환처럼 기침, 가래, 피로감, 숨참, 미열 등 비특이적 증상으로 시작되며, 초기에는 감기나 과로로 오해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 질환이 반복 노출에 따라 알레르기 반응이 점차 심화되며, 폐 조직 손상을 동반하는 만성 염증성 질환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아침에 심한 기침이 나고, 야외에서 일한 날 이후로 미열이나 가슴 통증이 지속되는 경우에는 반드시 검진이 필요합니다.

 

 제주 지역 일차 진료기관에서는 이러한 질환에 대한 인식이 낮아, 많은 환자들이 급성 기관지염, 독감, 천식 등으로 오진을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진단이 늦어지면 조직성 폐포염으로 진행되어 회복이 어려워지며, 일부는 폐 섬유화와 같은 심각한 후유증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실제 서귀포시 한림읍 지역에서는 해녀 출신 노인 중 60대 이상 여성 4명이 반복된 폐렴 증세로 입원한 뒤, 조직검사 결과 곰팡이 관련 항원에 대한 과민반응으로 진단된 사례도 있습니다.

 

 이 질병의 특이성은 ‘감염성’이 아닌 ‘면역 과민성’에 있다는 점입니다. 즉 병원체가 존재하더라도 항생제로 치료되지 않고, 면역억제 치료 또는 환경노출 회피가 핵심이 됩니다. 따라서 조기 진단과 정확한 원인 분석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이를 위해선 흉부 CT, 폐기능 검사, 혈청 내 곰팡이 항체 측정 등 정밀한 검사가 필요합니다. 문제는 이와 같은 진단 환경이 제주 지역 내 공공 의료기관에서는 여전히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해조류 산업 종사자 보호를 위한 예방 전략과 지역사회 역할

 이 특이질병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직업 환경 개선이 최우선 과제입니다. 우선, 해조류 건조 및 선별 작업 시 반드시 KF94급 마스크 착용, 작업장 내 환기 설비 설치, 장시간 작업 전·후 충분한 수분 섭취 및 휴식 등의 수칙을 생활화해야 합니다. 특히 건조 중인 해조류가 곰팡이가 핀 채로 방치되지 않도록 주기적인 뒤집기와 관리, 곰팡이 발생 시 신속한 폐기와 분리 보관도 필요합니다.

 

 지자체 차원에서는 서귀포시 해녀협회와 연계해 매년 건강검진 프로그램에 폐 질환 정밀검사 항목을 포함시키고, 해조류 작업자 대상 질병 자가진단 키트 배포, 농·수산 일터 위생점검 강화 등도 실질적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제주 해조류 특성에 따른 곰팡이균 실태 조사 및 항원 감작율 조사를 통해 지역 고유 질환에 대한 공공 데이터를 축적하고, 이를 토대로 산재 보험 포함 대상 확대나 특별 관리 구역 지정 등의 제도적 뒷받침도 고려되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직업 기반 특이질병이 지역의 보건 문제이자 문화유산 보호의 필수 조건으로 인식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해녀의 삶과 해조류 산업은 제주도를 대표하는 상징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건강을 해치는 환경에 노출된 채 그 가치를 유지하게 만든다면, 이는 결국 문화적 지속가능성마저 위협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특이질병은 단순한 의학적 사건이 아니라, 우리가 간과한 구조적 문제와 환경적 리스크가 뒤엉킨 결과입니다. 제주 서귀포의 해조류 산업을 지키기 위해선, 이제는 보건과 산업이 함께 움직이는 통합적 접근이 필요한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