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벌 노동의 이면, 재감염이 부르는 특이질병의 그림자
경상남도 남해군은 조개, 낙지, 바지락, 갯지렁이 등 다양한 갯벌 자원이 풍부한 지역으로, 지역 주민의 주요 생계 수단 중 하나가 갯벌 채취와 관련된 노동입니다. 하지만 이 전통적인 생업의 현장에는, 반복적인 기생충 노출과 감염을 유발하는 보건학적 사각지대가 존재합니다. 특히 최근에는 간흡충(Clonorchis sinensis) 재감염으로 인한 담관염 및 간질환 합병증 사례가 다수 보고되며, 지역 기반 특이질병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간흡충은 주로 담수 어류를 통해 감염되는 기생충이지만, 갯벌 생물인 붕장어, 망둥어, 생굴, 조개류 등을 날것으로 섭취하거나 작업 중 오염된 손으로 음식을 먹는 방식으로도 간접 감염될 수 있습니다. 특히 남해군처럼 갯벌과 연계된 민물 유입이 잦은 해안 지역은, 간흡충의 생활사가 충분히 성립될 수 있는 환경입니다. 이 때문에 갯벌에서 일하는 주민들은 일생 동안 수차례 간흡충에 감염되거나, 감염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장기간 기생충을 체내에 보유하게 되는 일이 드물지 않습니다.
문제는 간흡충이 장기간 담관 내에 기생하면 간 담관을 자극해 염증을 유발하고, 만성 담관염이나 담석증, 심한 경우 담관암과 같은 치명적 합병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특히 재감염이 반복되면 면역 반응이 둔화되고, 조직 손상이 누적되면서 자각 증상이 없이 심각한 상태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단순한 기생충 감염이 아니라, 특정 직업환경과 지역 생태조건이 만든 구조적 보건문제이자 특이질병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간흡충 감염의 생활사와 갯벌 노동의 위험 구조
간흡충은 사람 외에도 개, 고양이, 족제비 등 포유류를 종숙주로 삼으며, 민물고기 속에 존재하는 유충을 통해 감염되는 기생충입니다. 하지만 남해와 같이 민물과 바닷물이 교차하는 하구 갯벌에서는 기생충의 중간 숙주인 패류와 어류가 다양하게 존재하며, 지역 주민들은 이를 날것 또는 덜 익힌 상태로 섭취하거나, 갯벌에서 채취 작업 중 무의식적으로 손을 입에 대는 과정에서 감염될 수 있습니다.
특히 갯벌 채취 노동은 맨손으로 진흙을 파거나 조개를 만지는 일이 많고, 오랜 시간 작업하다 보면 손 씻기나 위생 관리가 소홀해지는 경향이 있어 기생충의 경구 감염 경로에 쉽게 노출됩니다. 또한 날씨가 더운 시기에는 식사나 간식도 작업 현장에서 즉석으로 해결하는 경우가 많아, 갯벌에서 묻어난 미세 오염물이 입으로 들어가기 쉬운 구조를 형성합니다.
재감염은 이 질병의 또 다른 특징입니다. 간흡충의 성충은 인체 내에서 수십 년간 생존 가능하며, 약물 치료로 일시적으로 제거하더라도 생활환경이 바뀌지 않으면 재감염이 반복될 수 있습니다. 특히 남해군 주민들 중 일부는 매년 간기능 수치가 오르락내리락하고, 피로감이나 식욕 부진을 호소하지만 원인을 명확히 알지 못한 채 방치하는 경우가 많으며, 건강검진 결과에서야 ‘간흡충 재감염’이라는 진단을 받는 경우도 많습니다.
2023년 남해보건소가 실시한 건강 조사에 따르면, 갯벌 어촌계 소속 노동자 200명 중 37%가 간흡충 항체 양성반응을 보였으며, 이 중 절반 이상이 2회 이상 감염 이력이 확인됐습니다. 이처럼 환경 기반 반복 감염 구조가 형성된 지역에서는 간흡충 감염이 단순 감염성 질환이 아니라, 지역 특이질병으로 접근해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담관염 합병증의 진행과 방치된 건강 문제
간흡충 감염은 초기에 뚜렷한 증상이 없기 때문에 자각하기 어려운 병입니다. 그러나 성충이 담관에 지속적으로 서식하면, 담즙의 흐름을 방해하고 담관 벽에 염증을 유발하게 되며, 시간이 지날수록 만성 담관염, 담석증, 간비대, 담즙정체, 간기능 저하로 진행될 수 있습니다. 간흡충 감염이 장기화될 경우, 담관암(담도암)의 발병률이 일반인보다 4~5배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갯벌 노동자 중 일부는 “복부가 뻐근하고, 오른쪽 갈비뼈 아래가 종종 눌리는 느낌이 든다”, “식사 후 속이 더부룩하고 쉽게 피로하다”는 식의 증상을 오랜 기간 겪지만, 갯벌 작업이나 생활 습관과 질병을 연결짓지 못한 채 치료 시기를 놓치고 있습니다. 또, 지방 거주 고령층의 경우 정밀검사에 대한 접근성이 낮고, 정기 건강검진을 거르기 쉬워 진단조차 되지 않은 채 만성 간질환이 진행되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특히 담관염은 급성으로 진행될 경우 고열, 오한, 황달 등 위험한 증상을 동반하며, 응급 수술이나 항생제 치료가 필요한 상황으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더 심각한 경우, 간내 담관이 협착되어 간기능이 비가역적으로 저하되거나, 패혈증으로 발전하기도 합니다. 이는 간흡충 재감염이 단순한 민간요법이나 간기능 보호제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하지만 현재까지도 갯벌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간흡충 감염률 추적조사나 재감염 위험에 대한 정기적 감시체계는 거의 부재한 실정입니다. 해당 질병이 직업성 질병 또는 지역 특이질병으로 관리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예방과 치료의 제도적 뒷받침도 미흡한 상황입니다.
예방과 정책적 접근: 생업과 건강 사이의 균형을 찾아야
간흡충 재감염에 의한 담관염은, 단순한 기생충 감염을 넘어 구조적 환경 질병으로 보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방의 핵심은 생활 습관 개선과 위생 관리, 그리고 정기적인 감염 여부 확인입니다. 우선 갯벌 작업자들에게는 작업 전후 손 씻기, 장갑 착용, 음식을 반드시 익혀 먹는 기본 수칙을 생활화하도록 교육해야 합니다. 또한, 현장에서 생굴이나 어패류를 날로 섭취하는 문화에 대한 보건 교육도 병행해야 합니다.
지자체에서는 갯벌 어업 종사자를 대상으로 한 연 1~2회 간흡충 감염 검사 및 항체 모니터링을 실시하고, 재감염자에 대해선 기생충 치료제(프라지콴텔) 무료 지급과 더불어 초음파 검사, 간기능 검사 등을 정기 건강검진 항목에 포함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간흡충 항체가 일정 수치 이상일 경우 담관 질환 위험군으로 분류하여 병원 연계 진료를 의무화하는 제도도 도입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국립기생충관리센터 혹은 질병관리청 주도로 지역 간흡충 역학조사와 환경생태계 내 기생충 분포조사를 병행하여, 남해군과 같이 재감염 위험이 높은 지역을 '특이질병 고위험지대'로 공식 지정하고, 공공의료 시스템 내에서 체계적인 관리가 이뤄지도록 법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건강위협이 ‘전통 노동’이라는 이름 아래 방치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갯벌은 생명의 터전이자 문화 자산이지만, 그 속에서 반복적인 건강위험에 노출되는 노동자들의 생명과 권리는 보호받아야 마땅합니다. 간흡충 재감염으로 인한 담관염은, 단순한 감염병이 아니라 특정 지역과 직업 환경에 의해 구조적으로 만들어진 특이질병이라는 점에서, 국가적 보건 전략의 우선순위로 다뤄져야 합니다.
'특이질병'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충청남도 서산 화학비료 공장 인근 주민에게 나타나는 특이질병, '만성 비인두염과 호흡기 과민증후군' (0) | 2025.07.18 |
---|---|
강원도 평창 고랭지 재배 농가에서 발생하는 특이질병, '저온작업성 하지혈관염' (0) | 2025.07.18 |
울산 석유화학 단지 인근 주민에게 나타나는 특이질병, '산업화학물질 기반 후각 신경손상' (0) | 2025.07.17 |
제주 서귀포 연안 해조류 수확자에게 나타나는 특이질병, '해조류 곰팡이 기인 폐 알레르기' (0) | 2025.07.17 |
경기도 하남시 미사리 조정경기장과 연관된 특이질병, '조류 배설물 호흡기 알레르기 반응' (0) | 2025.07.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