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과 공업이 공존하는 지역의 역설, 서산에서 발견된 특이질병
충청남도 서산시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농업 중심지이자 산업 발전이 활발히 진행된 도시 중 하나입니다. 특히 대산읍 일대를 중심으로 석유화학 및 화학비료 공장이 밀집되어 있으며, 동시에 논농사, 시설하우스, 과수원 등 농업 생산이 활발히 이뤄지는 이중적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공장 인근 주민들은 농촌적 삶의 양식을 유지하면서도 산업단지에서 발생하는 대기오염에 상시 노출되는 이중적인 환경에 놓여 있습니다.
최근 이 지역에서는 화학비료 공장에서 배출되는 미세 입자와 가스성 물질에 장기간 노출된 주민들 사이에서 ‘만성 비인두염’과 ‘호흡기 과민증후군’이 동시에 나타나는 특이질병 양상이 보고되고 있습니다. 이 두 질환은 각각 상기도 염증과 기관지 과민성 반응을 특징으로 하며, 독립적으로도 흔히 발생하지만, 지역 환경적 원인에 의해 동시적·복합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드문 사례입니다.
서산보건소와 지역 보건단체의 협력 연구에 따르면, 대산읍 내 공장 반경 3km 이내에 거주하는 주민 중 약 18%가 ‘목 통증, 코막힘, 기침, 재채기, 쉰 목소리’ 등의 만성적인 증상을 6개월 이상 경험하고 있었고, 이들 중 60% 이상이 병원 진료 기록이 있었으나 정확한 병명을 듣지 못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러한 복합증상은 기존 감기, 알레르기성 비염과 혼동되기 쉽지만, 실제로는 지역 환경 요인에 의해 유발된 특이질병으로 분류될 수 있는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화학물질과 호흡기 점막: 노출이 만든 병리학적 변화
비인두는 코와 목이 만나는 부위로, 외부 공기와 이물질이 처음 닿는 상기도의 일부분입니다. 여기에 암모니아, 이산화황, 황화수소, 염화수소, 질산염, 휘발성 유기화합물(VOCs) 등이 반복적으로 닿을 경우, 점막이 지속적인 자극과 염증에 노출되어 ‘만성 비인두염’으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특히 서산 화학비료 공장은 질소계 화학비료를 제조하며,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질소산화물, 암모니아 가스, 비료 분진 등이 인근 대기 중에 유입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만성 비인두염은 단순히 목이 아픈 정도의 문제가 아닙니다. 끈적한 가래, 인후 건조, 연하 곤란(음식 삼키기 어려움), 지속적인 후비루(콧물이 목으로 넘어가는 증상) 등 삶의 질을 크게 저하시킬 수 있으며, 더 심한 경우 인두 점막이 비후되거나 조직이 경화되어 만성적인 호흡곤란, 수면 무호흡 등의 2차 증상으로도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와 함께 나타나는 호흡기 과민증후군은 기관지 점막이 민감해져 가벼운 자극에도 기침, 재채기, 호흡 곤란, 천식 유사 증상을 반복적으로 일으키는 상태입니다. 이는 일반적인 천식과 달리 명확한 원인 물질이 없고, 환경적 유발 요인에 의해 일시적 또는 지속적으로 악화되는 점에서 구분됩니다. 공장 인근 주민들은 계절과 관계없이 화학물질 냄새가 강해지는 날에 증상이 심해진다는 점을 공통적으로 보고하고 있어, 지역 환경 노출과 증상의 연관성이 높다는 정황이 계속해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진단의 사각지대와 고립된 환경 질환 피해자들
만성 비인두염과 호흡기 과민증후군은 각각 흔하게 발생하는 질환이기 때문에, 이들이 동시에 나타날 경우에도 의료 현장에서 지역 환경 요인을 간과하거나, 개별적인 감기 혹은 알레르기성 반응으로 오진되는 경우가 매우 많습니다. 또한 환자 스스로도 이러한 증상을 “체질이 약해졌다”거나 “단순한 환절기 감기” 정도로 인식하며 적절한 치료를 받지 않고 넘어가는 일이 많습니다.
서산 시민환경모임이 2024년 초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화학비료 공장 반경 2km 이내 주민의 38%가 호흡기 문제로 진료를 받은 경험이 있으며, 이 중 다수는 3년 이상 같은 증상을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역 병원에서는 ‘만성 감기’ 혹은 ‘비염’으로 진단되는 경우가 많고, 근본적인 원인인 지역 환경 노출에 대한 인식은 거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게다가 호흡기 과민증후군은 의료보험 질병코드 상 천식이나 알레르기 질환군과 구분되지 않아, 실질적인 보장이나 장기 치료 지원이 매우 제한적입니다. 비인두염 역시 질병코드는 존재하지만, 지역 환경 요인과 연결하여 직업성 또는 지역 특이질병으로 인정받기는 어려운 구조입니다. 이러한 진단의 사각지대는 결국 질환의 만성화와 삶의 질 저하로 이어지고, 환자 개인의 문제로 고립되는 현실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사례들은 단순한 질환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 환경과 공공 보건 사이에 존재하는 구조적 단절과 제도적 부재를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라 할 수 있습니다.
예방과 개선을 위한 지역 밀착형 보건전략이 필요하다
이러한 지역 기반 특이질병에 대한 대응은, 무엇보다 조기 진단 체계의 확립과 지역 주민 대상 건강 모니터링 프로그램 구축이 핵심입니다. 서산시와 충청남도는 대산읍, 고북면 등 화학공장 인근 지역을 중심으로 이동형 건강검진 차량을 운영하고, 비인두염 및 기관지 질환 진단 항목을 포함한 연 1회 건강 진단 프로그램을 실시할 수 있습니다. 주민들이 스스로 증상을 자각할 수 있도록 자가진단 체크리스트와 보건교육 자료 배포도 병행되어야 합니다.
또한 지역 내 병의원과 협력하여 환경성 호흡기 질환 전담 진료소 혹은 특이질병 진단 거점 클리닉을 운영한다면, 빠른 진단과 치료로 진행성 질환을 막을 수 있습니다. 화학물질 노출 추적을 위한 대기질 정밀 측정망 강화, 주민 건강과 환경오염 정보를 연결한 데이터베이스 구축, 환경영향평가에 주민 참여를 제도화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입니다.
중앙정부 차원에서는 지역 기반 환경성 특이질병에 대한 표준 진단 지침과 건강영향평가 프로토콜을 제정하고, 고농도 노출 지역에 대한 우선 지원 지역 지정, 의료비 감면 및 약제비 지원, 장기 모니터링 지원 체계 등을 법제화해야 합니다. 특히 화학공장 인근에 거주하는 주민에 대해 환경성 질환을 별도로 관리하는 ‘환경 건강 등록제’ 도입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서산과 같은 지역에서 발생하는 복합 환경 질환은 단순한 감기나 민감성 반응으로 치부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는 명백히 특정 지역, 특정 조건, 특정 배출 환경에 기인한 특이질병이며, 국가와 지역 사회가 공동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만성화·고립화·불평등화되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아프면 개인 책임’이 아니라, ‘노출되었으면 공동 보호’라는 새로운 관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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