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이질병

특이질병 케이스파일: 피부에 갑자기 문신처럼 생기는 멍, '비타민 K 결핍 출혈증(Vitamin K Deficiency Bleeding)'

sudi-news 2025. 8. 9. 12:15

작은 멍에서 시작된 의외의 이상 신호

 몸에 특별한 외상이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갑자기 팔뚝이나 다리, 복부에 커다란 멍이 퍼지듯 생긴다면, 누구나 이상하다고 느낄 것이다. 더 놀라운 건 그 멍이 단순한 타박상이 아니라, 혈액이 정상적으로 응고되지 않아 피부 밑으로 스며든 출혈이라는 점이다. 특히 반복적으로 멍이 들거나, 양치 후 잇몸에서 피가 나거나, 코피가 자주 난다면 단순히 체질 문제로 넘기기엔 위험하다. 이런 경우 비타민 K 결핍에 의한 출혈성 질환, 즉 비타민 K 결핍 출혈증(Vitamin K Deficiency Bleeding, VKDB)을 의심할 수 있다.

비타민 K 결핍 출혈증, 피 응고가 잘 되지 않아 생기는 특이질병

 

 비타민 K는 혈액응고에 필수적인 영양소로, 체내에서 혈액이 너무 많이 흐르지 않도록 조절하는 ‘응고인자’를 활성화하는 데 필수적이다. 하지만 이 비타민은 수용성 비타민과 달리 지용성이기 때문에, 흡수 자체가 어렵고, 저장량도 적으며, 장내 세균에 의존해 합성되기도 한다. 이로 인해 신생아, 장질환 환자, 간질환 환자, 특정 약물을 복용하는 사람 등은 쉽게 결핍 상태에 빠질 수 있다. 특히 신생아의 경우 위장관이 완전히 발달하지 않아, 출산 직후 특별한 관리 없이 놔두면 생명을 위협할 만큼의 심각한 출혈이 발생할 수 있다.

 

비타민 K가 없으면 생기는 일들

 비타민 K는 혈액 내에서 응고에 관여하는 프로트롬빈(Prothrombin), 제7·9·10번 응고인자 등을 활성화하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 이 인자들은 출혈이 발생했을 때 혈소판과 함께 혈전을 형성하여 피를 멎게 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비타민 K가 부족하면 이 인자들이 활성화되지 못하고, 피가 멈추지 않고 계속 흐르거나, 내부 출혈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흔히 피부 밑 멍, 코피, 잇몸 출혈, 소변 또는 대변에 피가 섞여 나오는 증상 등이 나타난다. 간혹 관절 속이나 장기 내부 출혈로 이어져, 외부에서 쉽게 인식되지 못하는 위험한 상황이 초래될 수도 있다.

 

 이 질환은 특히 세 부류에서 주의가 필요하다. 첫째는 신생아다. 생후 24시간7일 사이에 발생하는 조기형 VKDB, 26주 사이에 발생하는 고전형 VKDB, 생후 2주~6개월 사이에 나타나는 후기형 VKDB로 나뉘며, 예방접종을 받지 않은 아기에게서 특히 많이 발생한다. 둘째는 만성 간질환 환자다. 간은 응고인자 생성의 중심기관으로, 간 기능이 저하되면 비타민 K가 있어도 기능이 제한된다. 셋째는 지방 흡수가 어려운 만성장질환 환자항생제를 장기 복용하는 환자다. 이들은 장내세균이 파괴되어 비타민 K 합성이 떨어지며, 이로 인해 출혈 위험이 높아진다.

 

진단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비타민 K 결핍 출혈증은 단순한 혈액검사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프로트롬빈 시간(PT)과 국제정상화비(INR) 지표가 중요한데, 이 수치가 높게 나타나면 혈액응고가 느려져 출혈이 쉽게 발생하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그 외에도 응고인자 검사를 통해 제2, 7, 9, 10번 응고인자의 감소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출혈의 원인이 정확히 비타민 K 결핍 때문인지 확인하기 위해, 비타민 K 주사 후 수치가 정상으로 회복되는지를 보는 것이 중요한 진단 포인트가 된다.

 

 또한 환자가 현재 복용 중인 약물도 진단에 영향을 미친다. 특히 항생제 중 세팔로스포린 계열, 쿠마린계 항응고제(예: 와파린)를 복용 중일 경우 비타민 K 흡수 및 기능을 억제할 수 있어, 출혈 위험이 높아진다. 간기능 검사, 장기 초음파 검사 등을 통해 기저 질환 여부를 함께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다. 특히 성인의 경우 단순한 비타민 결핍이 아닌, 위장관 종양, 간암, 장흡수장애 질환 등 심각한 원인이 숨겨져 있을 수 있어 포괄적인 진단이 필요하다.

 

치료는 단순하지만 타이밍이 중요하다

 비타민 K 결핍 출혈증의 치료는 비교적 간단하다. 비타민 K를 경구 또는 정맥으로 투여하면 대부분의 경우 수 시간 내로 혈액응고 기능이 회복된다. 응급 상황에서 출혈이 심한 경우에는 혈액제제(신선동결혈장, 응고인자 제제)를 함께 투여해야 하며, 신생아의 경우 생후 24시간 이내에 예방 목적으로 비타민 K를 근육주사하거나 경구 투여한다. 국내에서는 신생아 모두에게 생후 1회 근육주사 후, 생후 7일, 1개월째 추가 경구 투여를 권장하고 있다.

 

 하지만 치료보다 중요한 것은 예방과 조기 인식이다. 신생아의 경우 초기에는 출혈 증상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예방 주사를 맞지 않으면 돌연사처럼 뇌출혈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부모의 인식이 매우 중요하며, 의료기관에서도 출산 직후 철저한 예방 관리를 시행해야 한다. 성인의 경우에는 장기 복용 중인 약물과 기저 질환에 따른 결핍 위험을 파악하고, 정기적으로 혈액 응고 수치를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 번의 멍이 단순한 타박상이 아닌, 몸의 경고 신호일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대응해야 한다.

 

작은 결핍이 불러오는 큰 위협

 비타민 K 결핍 출혈증은 널리 알려진 질환은 아니지만, 실제 임상에서는 의외로 자주 발생하고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특이질병이다. 특히 신생아 사망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힐 만큼 빠른 진행성과 치명성을 지니며, 성인에게도 간질환이나 항생제 장기 복용 같은 간접적인 결핍 유발 요인이 많기 때문에 항상 경계를 늦추면 안 된다. 특히 고령자나 만성질환자는 멍, 코피, 치은출혈과 같은 사소한 증상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며, 약 복용 내역을 반드시 주치의와 공유해야 한다.

 

 또한 이 질환은 의외로 식습관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초록잎 채소(시금치, 케일, 브로콜리 등)와 같은 비타민 K가 풍부한 식품을 기피하는 식습관이나, 지나치게 지방을 제한하는 다이어트는 비타민 K 섭취를 방해할 수 있다. 의료진뿐 아니라 일반인도 출혈성 질환 예방을 위해 자신의 식습관, 약물 복용 상태, 기저 질환 여부를 체크하고, 정기검진을 통해 건강 상태를 점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결국, 비타민 K 결핍 출혈증은 ‘작은 영양소 하나가 생명을 좌우할 수 있다’는 강력한 교훈을 주는 질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