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이질병

부산 신항 컨테이너 야드 관리자에게 나타나는 특이질병, '야간 근무성 교감신경계 항진증'

sudi-news 2025. 7. 26. 20:27

야간조 관리자들이 겪는 설명하기 어려운 증상들

 대한민국 최대 무역 항만인 부산 신항은 24시간 멈추지 않는 물류의 중심지다. 이곳의 컨테이너 야드(Yard)에서는 야간 시간에도 하역 작업, 입출고 관리, 장비 운용 스케줄 조정 등이 계속된다. 특히 야드 관리자는 밤샘 스케줄과 반복적인 고강도 정신 집중 업무를 소화해야 하며, 무전 통신, 모니터링, 입출항 조율 등 복잡한 상황을 실시간으로 처리해야 한다. 그런데 최근 부산 신항에서 야간 근무를 장기적으로 지속한 관리자들 사이에서 공통적인 증상이 보고되고 있다. 불면증, 과도한 땀 분비, 가슴 두근거림, 식욕 저하, 만성 피로, 손발 저림, 감정 기복 등 자율신경계 이상 소견이 주를 이룬다.

야간 근무성 교감신경계 항진증, 야간조에서 발병하는 특이질병

 

 이러한 증상은 병원을 찾아도 원인을 찾기 어려운 경우가 많고, 일반적인 ‘스트레스 반응’이나 ‘생활 습관 문제’로 진단되기 쉽다. 그러나 증상이 규칙적으로 야간 근무가 반복될수록 심화되고, 주간 근무나 휴무일에는 다소 완화된다는 점에서 단순한 과로나 수면 부족 이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상태를 ‘야간 근무성 교감신경계 항진증’으로 명명하고, 심장박동, 체온, 혈압, 호르몬 분비 등 신체의 항상성을 유지하는 교감신경이 과도하게 활성화된 상태가 만성화되며 생기는 신체적·정신적 이상 증후군으로 정의하고 있다. 특히 이 증후군은 항만 야드라는 특수 환경에서 근무하는 관리자들에게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지역 기반 특이질병’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생체 리듬의 붕괴와 교감신경계의 만성 과활성화

 인간의 생체 리듬은 낮과 밤을 기준으로 설정된 서카디안 리듬(Circadian Rhythm)에 따라 신체 기능을 조절한다. 특히 수면, 소화, 호르몬 분비, 체온 조절, 면역 기능 등은 모두 이 리듬에 영향을 받으며, 야간 근무는 이를 역행하게 만든다. 밤에 깨어 있으면서 신경을 곤두세우는 상황이 반복되면, 몸은 낮인 줄 착각하고 교감신경계를 활성화시킨다. 문제는 이 상태가 반복되면, 낮에도 교감신경이 진정되지 못해 항상 몸이 긴장 상태에 빠지고, 휴식 중에도 심장이 뛰고 근육이 이완되지 않는 상태가 지속된다는 것이다.

 

 부산대학교 병원의 직업환경의학 연구팀은 부산 신항 컨테이너 야드 근무자 87명을 대상으로 야간 근무 전후 심박변이(HRV), 수면 질, 코르티솔 수치를 측정한 바 있다. 그 결과, 야간 근무 후 평균 심박수는 평상시보다 14% 증가했고, 코르티솔(스트레스 호르몬)은 2배 이상 상승, 심박변이 수치는 급격히 감소해 교감신경 우세 상태가 장시간 지속됨을 입증했다. 또한 수면 패턴이 교란된 근무자일수록 낮 시간에도 교감신경 항진 상태가 유지되어, 장기적으로 심혈관계 질환, 면역력 저하, 불안장애, 우울증 등 2차 질환 발생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사실이 보고되었다. 이로 인해 부산 신항의 야드 관리직은 단순한 야근이 반복되는 수준을 넘어, 교감신경계의 만성적 기능 이상이 고착되는 환경에 놓인 직군으로 간주돼야 한다.

 

관리직 노동자의 건강은 시스템의 사각지대에 있다

 항만 야드 관리자들은 단순한 체력 노동자와 달리 정신 집중, 긴장 조절, 다중 정보 처리, 즉각적인 의사결정이 핵심 업무인 ‘고부하 스트레스’ 직군이다. 특히 야간 시간에는 컨테이너 이동량이 낮아짐에도 불구하고, 선적·하역 스케줄 조정, 오류 대응, 긴급 상황 대처 등으로 인해 심리적 부담이 집중되는 시간대다. 그런데 이들에 대한 건강관리 체계는 놀라울 정도로 미비하다. 대다수 관리자들이 정규직 혹은 계약직이지만, 야간 근무에 따른 심리·생리적 영향에 대한 정기적인 검사나 대응 프로그램은 거의 전무한 상황이다.

 

 실제 부산 신항 관리직 노조에서 2023년 자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야간 근무 경험이 5년 이상인 관리자 54%가 '설명할 수 없는 긴장감, 불면, 흉부 압박감' 등을 경험했고, 이들 중 상당수가 자율신경 이상 진단을 받았으나 정확한 병명 없이 신경정신과 혹은 내과를 전전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한 관리자 B씨는 “야간에 근무하고 나면 하루 종일 가슴이 뛰고, 앉아 있어도 긴장된 느낌이 풀리지 않는다”며 “병원에서는 심장도 멀쩡하고, 피로라고만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C씨는 “이제는 밤낮이 바뀐 삶이 익숙해졌지만, 그 대신 늘 피곤하고 무언가 불안한 느낌에 시달리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처럼 명확한 진단 없이 증상을 감내하며 일하는 관리자들의 상황은, 야간 교대제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교감신경계 항진증, 특이질병으로의 인식과 제도화 필요

 ‘야간 근무성 교감신경계 항진증’은 단순한 스트레스나 수면 부족이 아닌, 장기적인 자율신경계 손상을 유발할 수 있는 복합적인 생리학적 증후군이다. 이는 부산 신항이라는 특정 지역, 야간 컨테이너 야드라는 특정 환경, 관리자라는 특정 직군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증상이라는 점에서 지역 기반 특이질병으로 정의할 필요성이 충분하다. 이를 위해 우선, 야간근무자에 대한 심박변이(HRV) 측정, 코르티솔 수치 분석, 수면 다원 검사 등 신경계 중심의 특수 건강검진 체계가 마련되어야 한다. 특히 심혈관계 질환이나 정신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는 초기 경고 신호를 감지하는 장치가 선제적으로 필요하다.

 

 또한 항만공사 및 관련 고용기관은 근무 스케줄의 순환 주기 개선, 야간근무 인력의 휴식시간 보장, 교대제 간 간격 조정 등의 노동조건 개선과 함께, 정신건강 전문상담 및 피로도 회복 프로그램을 의무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이 증상을 포함한 ‘야간 근무 기반 자율신경계 질환군’의 연구 및 질병 코드 신설, 그리고 관련 직군에 대한 산재 적용 기준 확립도 병행되어야 한다. 부산 신항은 대한민국 경제의 심장이라 불리지만, 그 심장을 움직이는 이들의 건강이 무형의 질병에 침식당하고 있다면, 시스템 자체가 위협받고 있는 셈이다. 이제는 이 질병을 진지하게 들여다볼 때다.